“첫 3일은 휴가”→“9일 모두 출장” 말 바꿔

  • 입력 2008년 2월 13일 02시 50분


‘외유성 출장’ 논란 유홍준 문화재청장 이상한 해명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힌 뒤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당일 논란이 된 부부 동반 외유성 유럽 출장을 해명했으나 석연찮은 대목이 여러 곳 있었다. 유 청장은 “외국에서는 초청을 받으면 부인도 함께 간다”며 문제없다는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 6∼14일 9일간의 출장 일정과 1680만 원의 출장비 해명도 명쾌하지 않았다.

▽‘휴가’가 아니라 ‘출장’이었다?=유 청장은 1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출석한 뒤 본보 기자에게 “첫 3일은 휴가였으며, 출장을 붙여서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 청장이 국무조정실에 제출한 출장계획서에는 9일 일정이 출장으로 기록돼 있다. 유 청장은 12일 기자회견에서는 “설 연휴 휴가기간을 이용해 출장명령을 받아 갔던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연휴 중 출장’을 ‘휴가’라고 잘못 표현했다고 해명한 것이다. ‘휴가와 출장을 붙여서 갔다’고 한 말이 사실이라면 휴가기간까지 포함해 출장비를 받은 셈이 돼 문제가 더 불거지기 때문이다.

▽부인 동반은 부적절한데도=유 청장은 “외국에는 초청받으면 부부가 같이 간다. 그런데 우리는 놀러간다는 인식이 강해서 홀아비처럼 혼자 간다. 서양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이상하게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부인을 데려가면서 호텔방은 내가 머무는 방을 같이 쓰고, 항공료는 대한항공에서 지원받았다”며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청장 부부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초청받은 행사는 12일 루브르 박물관 한국어 안내서비스시스템 개통식이었다. 6일부터 5일간의 네덜란드 방문을 비롯해 파리 유네스코 방문 등은 문화재청이 마련한 것으로 초청 행사는 아니었다. 유 청장은 “출장에서 부인을 동반해야 할 만찬 같은 자리가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시원스레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고위 공직자가 민간 기업에서 거액의 항공료를 지원받은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대한항공이 1등석 제공=유 청장은 “대한항공이 후원한 파리 루브르 박물관 내 한국어 안내서비스시스템 개통식에 초청받았기 때문에 항공료를 대한항공이 부담했다. 차관급은 2등석을 타야 하는데 그 덕분에 1등석을 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초청을 받았으니 (항공권을) 지원받은 것이고, 함께 가는 직원은 지원을 받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유 청장은 부인이 항공권을 지원받은 것에 대해서는 함께 가는 것이므로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유 청장 부부에게 비즈니스석 왕복항공권(1122만 원 상당)을 제공했으나 유 청장이 탑승한 뒤 1등석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공무원들이 공무 출장 중 발생한 항공사 마일리지도 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하물며 공무 출장에 민간업체로부터 항공료와 숙식비 일체를 제공받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출장비도 석연찮아=유 청장은 “공무원 출장비는 현금으로 받는 게 아니라 카드로 지급받아 쓰고 추후 결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의 한 공무원은 “국내 출장은 카드 사용이 의무화돼 있으나 해외 출장 때는 일비나 식비 등을 통상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밝힌 1680만 원의 내용은 교통비(기차요금, 직원 항공요금) 186만 원, 숙박 및 식비 550만 원, 차량 대여 및 가이드 비용 647만 원, 통역비 200만 원, 업무 추진비 100만 원 등이다. 문화재청은 유 청장의 출장 목적에 대해 “프랑스 파리에서 유네스코 고위 인사 면담을 통해 조선 왕릉과 남해안 공룡화석지의 세계유산 등재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차량, 가이드 비용’ ‘숙박 및 식비’ 중 절반 이상이 프랑스 파리보다 ‘외유성 출장’이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정에 쓰도록 돼 있었다. 유 청장은 네덜란드에서 5일간 머물면서 하멜의 고향인 호린험 시를 방문(8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풍차마을 방문’ 등 관광 일정으로 보냈다. 이 기간 유 청장은 차량 및 가이드 비용으로만 360여만 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꼭 가야 할 출장이었나=유 청장은 프랑스 방문에 대해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을 통해 일정을 잡았다”며 공문 사본을 공개했다. 네덜란드 호린험 시 방문과 관련해서도 “떠나기 전 강진군수와 하멜기념관의 유물 구입, 하멜기념관 동상 건립과 관련해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네덜란드 한국대사와 식사를 하면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진군청이나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실무진은 유 청장 일행의 출장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유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그들만 몰랐다”고 해명했으나 이는 공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일정을 잡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호린험 시와 자매결연을 한 황주홍 강진군수는 본보 기자에게 “(유 청장이) 네덜란드에 간다고 해서 하멜기념관 관련 유물 구입 등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해 강진군 하멜기념관 개관식 때 호린험 시장이 방문한 데 대한 답방 성격도 있었다고 한다. 자매결연 도시를 방문하는데 자치단체장이 아닌 문화재청장이 직접 가는 것은 관례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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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신원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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