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일자리 없어 마지막 기회로 생각”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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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슈퍼모델 동양인 첫 우승 강승현 씨

《“그래, 그냥 뉴욕 여행이나 실컷 하다 가야지….” 힘없던 두 다리가 순간 단단해졌다. 마음을 비우니 긴장감도 사라졌다. 3등, 2등… 푸른 눈을 가진 동료들이 하나씩 상을 탈수록 그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하게 여길 뿐이었다. 순간, 어려운 영어 단어 속에서 단어 하나가 정확히 들렸다. ‘코리아.’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수백 개의 눈동자가 그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효니”, “위너” 소리. 16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탄생한 신데렐라는 바로 한국의 무명 대학생 모델 강승현(21·동덕여대 모델학과 3년·사진) 씨였다. 세계슈퍼모델대회인 ‘포드 슈퍼모델 오브 더 월드’에서 그는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1등을 차지했다.》

19일 오전 국제전화로 만난 이 ‘파란(波瀾)의 주인공’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다.

“제 자신이 기특해요. 제 이름이 어려워서 대회 내내 ‘효니’라고 불렸는데 상은커녕 날 알아주기나 할까 생각했죠. 그래도 신기한 건 한국인이라 그런지 ‘코리아’ 이 단어 하나는 잘 들렸어요. 어제 뉴욕 지하철역에서는 벌써 절 알아보는 한국인도 만났어요.”

올해로 28년째를 맞는 이 대회는 슈퍼모델대회 중 역사가 가장 길다.

한국인이 출전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강 씨는 지난해 9월 이 대회 한국 예선에서 1등을 차지했다. 세계 49개국에서 출전한 모델들을 모두 제친 그는 상금 25만 달러(약 2억3400만 원)를 받고 주최회사인 ‘포드 모델스’와 전속계약을 하게 된다. 이제 그의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진다.


▲ 영상제공 : CCH주식회사


▲ 영상 편집 : 동아일보 김동주 기자

그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만큼 비장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모델 활동을 했는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어요. 모델학과에도 진학했지만 하도 일거리가 없어서 밥은 먹고 살 수나 있을까 걱정했답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전공을 옮길까도 고민했지요.”

강 씨를 가르친 동덕여대 김동수(모델학) 교수는 “노력파로 불릴 만큼 열심히 했지만 쌍꺼풀이 없고 이마가 넓은 동양적인 외모 때문에 모델 포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해외에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강 씨 역시 ‘포카혼타스’ 같은 자신의 동양적 외모가 우승의 1등 공신이라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화장을 하면 눈썹도 진하게 그리고 눈도 크게 그리잖아요. 여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눈썹은커녕 화장도 잘 안 해줘요. 코가 하늘을 찌르지 않아도, 이마가 튀어나와도 그런 자연스러움을 다들 예쁘다고 해요. 우리나라 모델들도 이젠 어깨 펴고 당당히 도전해야 합니다.”

그는 이제 당분간 해외에 머물러야 할 신세다.

데뷔 무대는 2월에 있을 뉴욕 컬렉션.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컬렉션, 프랑스 파리 컬렉션 등 3월까지 세계 3대 패션쇼 무대에 선다.

전화 인터뷰 내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꿈같아요”를 연발했다. 경쾌한 그의 말투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성격’이었다.

강 씨는 “뉴욕에 와서 다들 영어를 유창하게 해 주눅이 들었는데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면서 “짧은 영어 실력으로 겁 없이 여기저기 말을 걸고 다녔다”며 웃었다. 그런 그에게 누구를 닮은 모델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강승현’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제2의 누구’가 아닌 동양의 제1모델 강승현이 되고 싶어요.”

스물한 살의 미스 포드, 새로운 ‘오리엔탈 특급’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 동영상 제공 : CCH주식회사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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