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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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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오는 풋풋한 작가들.
“등단하게 되니 좋지요?”라고 묻자 그제야 살짝 웃음을 띠었다.
막 작가가 된 이들의 기쁜 웃음을 독자들에게 보낸다.
2400여 명 경쟁자들을 제치고 뽑힌 당선작과 당선소감, 심사평도.》
>> 당선자들의 작품밖 이야기들
| ‘신춘문예 2008’ 기사목록 |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가가 된 이들, 세상에 알리고 싶은 얘기도 많을 터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작품 바깥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당선 소식에 어떤 기분이었나?
“어렵게 앉은 지하철 좌석에서 일어나,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왔다 갔다 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희곡 이진경 씨)
“도무지 믿기지 않아 친구들에게는 통보받은 지 나흘이 지나서야 소식을 전했다.”(중편소설 정수진 씨)
“통보 전화를 받았을 때 코피가 흘렀다. 현기증이 날 때, 흘려야 될 피가 아닐까 생각했다.”(시 이은규 씨)
―왜 작가의 길을 선택했나?
“사업 실패와 심한 천식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죽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힘을 냈다. 지난 일을 잊으려고 시조를 쓰기 시작된 것이 큰 결실을 맺게 됐다.”(시조 김종열 씨)
“어린 시절부터 책을 탐했다. 책 읽기는 세계에 대해, 인간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란 걸 알게 되면서 서서히 작가의 길로 ‘흘러왔다’.”(중편소설 정수진 씨)
“말을 할 때는 내 안의 무거움을 감추지만 글을 쓸 때는 그 무거움을 드러낼 수 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영화평론 이나라 씨)
―등단하기까지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적잖았을 텐데….
“문학 공부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뒤부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모든 어려움이 재능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우울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하여, 계속 썼다.”(문학평론 윤경희 씨)
“자신만만했던 20대에 보르헤스를 읽었다.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들어있는 걸 보고 절망에 빠졌다. 소설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남으려고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뭔가 얘기를 하고 싶어 입과 손가락이 간질간질해졌다.”(단편소설 조현 씨)
“가까운 소설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내게 말했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행복할 텐데….’ 쓰지 않으면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고통스럽다고 사랑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동화 박소명 씨)
“단장의 고통은 장이 끊어지는 고통이 아니라, 장을 끊어버리고 싶은 고통일 것이다. 아직까지 장을 끊지 않았으므로 가장 힘겨웠던 때는 도착하지 않은 셈이다.”(시 이은규 씨)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심심한 누군가에게 재미를, 지친 누군가에게 위로를, 소심한 누군가에게 자신감을. 단 몇 분이라도 좋다. 읽는 이의 심장을 바람처럼 관통해 가면 그걸로 족하다.”(중편소설 정수진 씨)
“평론가는 곧바로 말하는 게 아니라 좀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보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영화평론 이나라 씨)
“건강한 뇌와 심장, 혓바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 결국, 나는 죽을 때까지 사람들과 수다 떨며 사랑받으며 사는 작가가 되고 싶다.”(희곡 이진경 씨)
“언제나 꿈꿀 것이고 하나씩 계단을 밟듯 나아가겠다. 우선은 서점에서 사인회 하는 꿈부터.”(동화 박소명 씨)
―당선 고료를 어떻게 쓸 계획인지?
“후원의 인연을 맺은 모잠비크 소녀에게 상금의 절반을 주려고 한다. 나머지는 지금부터 생각해 볼 것이다.”(단편소설 조현 씨)
“노트북을 사고 싶다. 여유가 있다면 여태껏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외출복을 사주고 싶다.”(시조 김종열 씨)
“100만 원은 항공료(프랑스 유학 중), 100만 원은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25만 원씩, 나머지 100만 원으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밥과 술과 선물을 사는 데.”(문학평론 윤경희 씨)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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