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로 선생’ 이홍우 화백 40년 만화인생 책으로 펴내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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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시사만화 작가 인생을 정리한 책 ‘나대로 간다’를 펴낸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화백. 그는 “시사만화가는 절묘한 풍자와 아이디어를 패로 놓고 사회와 판을 겨루는 타짜”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40년 시사만화 작가 인생을 정리한 책 ‘나대로 간다’를 펴낸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화백. 그는 “시사만화가는 절묘한 풍자와 아이디어를 패로 놓고 사회와 판을 겨루는 타짜”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1980년 11월 12일이 기억납니다. 그날은 계엄하 정치 규제 인사 명단이 발표된 다음 날이죠. ‘나대로 선생’이 첫 회에서 ‘규제 명단에서 빠진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검열 때문에 3번 넘게 퇴짜를 맞았어요. 결국 ‘참신한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로 바꿨습니다. 그 이후에도 검열과의 싸움은 계속됐죠.” 본보에 연재 중인 ‘나대로 선생’의 작가 이홍우(58) 화백에게 총 8524회를 그리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고심 끝에 뱉어 낸 말이다. 》

이 화백은 최근 자신의 40년 시사만화 작가 인생을 정리한 ‘나대로 간다’를 발간했다. 이 책은 그의 시사만화 작품을 토대로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세월 △정치인들과의 인연 △5, 6공화국부터 참여정부까지의 정치풍자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동아일보에서만 ‘나대로 선생’을 27년째 연재해 온 이 화백은 중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상경해 당시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 전시회를 찾아가 자신의 작품을 김 화백에게 선보일 정도로 소년기부터 시사만화에 푹 빠져 지냈다. 그는 서라벌고에 입학한 후 학생잡지에 고정 만화를 기고했고 1967년 서라벌 예술대 2학년 당시 대전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연재했으며 1973년부터는 전남일보에서 ‘미나리’를 선보였다.

1980년대 동아일보 연재 이후 그의 ‘나대로’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랄 수 있는 ‘나대로’였다. 이 화백이 그린 만화는 끊임없이 사회와 교감하며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었고 하나의 정치 담론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노사모 대신 노사팔(노 대통령 사돈의 팔촌)이 뜬다’고 그린 만화는 청와대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2005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란 말을 사용하자 노 대통령이 TV에 나와 ‘저도 매일 경제를 들여다본다’고 하더군요. 시사만화는 살아 있는 권력을 비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과 끊임없이 교감합니다. 그런 부분의 정수를 뽑아 낸 게 시사만화예요. ‘나대로 선생’의 사회적 임팩트가 강한 이유죠.”

그의 만화는 항상 대중에게는 즐거움이고 정치인에게는 쓰라림이었다. 1997년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다루며 ‘대쪽 집안이라 속이 비어 몸무게가 안 나간다’고 만화를 그리자 이 후보 측이 발끈했다.

1992년 대선 때는 정주영 후보가 자신의 얼굴 속 검버섯을 빼 달라고 했으며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에서 군 장성이 국회의원을 때린 국방위 회식 사건을 풍자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 화백은 ‘나대로 선생’ 특유의 재기 발랄한 풍자,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그콘서트’ 등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고 각종 서적, 일간지, 경제지, 영화 등 동시대 이슈에 대해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섭렵하려 노력한다.

“사실 문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날은 1년에 며칠 안 됩니다. 한 코미디언이 말했죠. ‘당신을 한 번 웃기려고 난 100번 운다’고…. 지금도 담배를 하루 두 갑 넘게 피웁니다. 정말 미치지 않았으면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사만화가 미치도록 좋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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