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백은 최근 자신의 40년 시사만화 작가 인생을 정리한 ‘나대로 간다’를 발간했다. 이 책은 그의 시사만화 작품을 토대로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세월 △정치인들과의 인연 △5, 6공화국부터 참여정부까지의 정치풍자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동아일보에서만 ‘나대로 선생’을 27년째 연재해 온 이 화백은 중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상경해 당시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 전시회를 찾아가 자신의 작품을 김 화백에게 선보일 정도로 소년기부터 시사만화에 푹 빠져 지냈다. 그는 서라벌고에 입학한 후 학생잡지에 고정 만화를 기고했고 1967년 서라벌 예술대 2학년 당시 대전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연재했으며 1973년부터는 전남일보에서 ‘미나리’를 선보였다.
“2005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란 말을 사용하자 노 대통령이 TV에 나와 ‘저도 매일 경제를 들여다본다’고 하더군요. 시사만화는 살아 있는 권력을 비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과 끊임없이 교감합니다. 그런 부분의 정수를 뽑아 낸 게 시사만화예요. ‘나대로 선생’의 사회적 임팩트가 강한 이유죠.”
그의 만화는 항상 대중에게는 즐거움이고 정치인에게는 쓰라림이었다. 1997년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다루며 ‘대쪽 집안이라 속이 비어 몸무게가 안 나간다’고 만화를 그리자 이 후보 측이 발끈했다.
1992년 대선 때는 정주영 후보가 자신의 얼굴 속 검버섯을 빼 달라고 했으며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에서 군 장성이 국회의원을 때린 국방위 회식 사건을 풍자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 화백은 ‘나대로 선생’ 특유의 재기 발랄한 풍자,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그콘서트’ 등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고 각종 서적, 일간지, 경제지, 영화 등 동시대 이슈에 대해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섭렵하려 노력한다.
“사실 문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날은 1년에 며칠 안 됩니다. 한 코미디언이 말했죠. ‘당신을 한 번 웃기려고 난 100번 운다’고…. 지금도 담배를 하루 두 갑 넘게 피웁니다. 정말 미치지 않았으면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사만화가 미치도록 좋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