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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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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습니다.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차가 뭘 하는지 가만히 서 있습니다. 마음이 급한 탓에 경적을 누르고 몇십 초를 손해 본 기분으로 차를 틀어서 옆 차선으로 지나가는데 백발이 성성한, 선생님만 한 연세의 옆 차 운전자가 내게 화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빨리 빠져나가고 싶지만 버스가 길 가운데 서서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는 바람에 갈 수가 없습니다. 버스는 맨 바깥 차선에 줄지어 정차한 차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고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바꿉니다. 주택가의 좁은 길입니다. 막히지는 않지만 원래 속도를 낼 수가 없는 길이군요. 나는 또 몇 분, 아니 몇십 분을 손해 봅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겨우 큰길을 만나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맞은편 인도에서 자전거에 사람이 부딪쳐 넘어지는 게 보입니다. 무슨 좋은 구경이라고 앞에 가던 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나도 아슬아슬하게 멈췄습니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차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뒤의 차가 내 뒤에 있는 차와 조금 세게 부딪칩니다. 앞 차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버립니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 차도 피해가 없습니다만 뒤따라온 차들의 사고에 원인을 제공한 꼴이 되어 발이 묶이고 맙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결정적인 잘못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남과 나의 사소한 잘못과 불운이 쌓이고 새끼줄처럼 꼬이는 날.
“그런 날이 누구에게나 평생에 며칠은 있지.”
사과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작가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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