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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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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과 문학을 넘어 기호학 정신분석학 종교학 철학 여성학 등 전 분야에 걸쳐 굵직한 논의들을 제시해 온 크리스테바가 호시탐탐 넘보는 분야는 추리소설이다. 세계적 지성이 창조해 내는 추리의 세계라는 점만으로도 ‘비잔틴 살인사건’은 유의미하다. 이 책은 역사와 허구, 실제와 추리가 교묘하게 어우러진 가운데 다양한 이론과 지식이 넘쳐흐르는 팩션(faction)으로, 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합소설(Roman Total)’을 표방한다.
마약과 사이비 종교의 천국인 산타바르바라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넘버8’이라 불리는 살인자는 사이비종교 신도 8명을 처단한 뒤 시체에 8이라는 의문의 기호를 남기고 사라진다. 한편 산타바르바라대 ‘이주사 연구소’의 교수인 세바스찬은 자신의 조교이자 정부인 파창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목졸라 죽인다. 역시 세바스찬의 조교이자 세바스찬의 아내와 정을 통하던 미날디마저 넘버8에게 살해되면서, 피해자는 8명이 아닌 무한대(∞)로 늘어난다. 천재적인 사이코패스 넘버8은 왜 사람들을 처단하는 것일까. 넘버8과 살해된 파창과는 어떤 관계인가. 소설은 살인사건을 취재하려는 기자 스테파니 들라쿠르와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 노드롭 릴스키의 눈을 통해 교차적으로 진행된다.
‘비잔틴 살인사건’의 방점은 ‘살인사건’에 있지 않고, ‘비잔틴’에 있다. 크리스테바는 지구촌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차별과 불평등,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적 도시를 ‘산타바르바라’로 설정한다. 반면 산타바르바라의 반대향, 인간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노스탤지어가 바로 비잔틴이다.
‘비잔틴 살인사건’에서 소설가 크리스테바는 여전히 이론가 크리스테바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살인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친절하게 풀어 나가기보다는, 정신분석학이나 중세의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 ‘철학가, 언어학자, 기호학자인 크리스테바’의 실명이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결국 크리스테바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요, 크리스테바를 알고 읽어야 재미있는 소설이다.
한혜원 계명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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