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大選콤플렉스’는 없다…‘죽쑤는 해’ 속설은 근거없어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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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소설보다 흥미진진한데 왜 소설을 보겠나.”

대선이 있을 때면 나오는 이야기다.

대선을 비롯해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행사가 열릴 때는 사람들이 소설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특히 후보를 둘러싸고 폭로와 공방이 이어지는 대선의 해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뉴스가 이어지면서 한국 소설 시장에 찬바람이 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정말 그럴까.

1992년부터 최근까지 베스트셀러 집계를 토대로 조사해 본 결과 ‘대선 때 소설 안 본다’는 이야기는 맞지 않았다.

대선과 소설 판매 사이에는 별다른 함수관계가 없었다.》

○ 대선이 있거나 없거나

1992년 대선의 해, 한국 소설의 힘은 꺾이지 않았다. 양귀자 씨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78만여 부, 이은성 씨의 ‘소설 동의보감’은 56만여 부가 팔렸다. 이문구의 ‘매월당 김시습’도 15만여 부 나가면서 호평을 받았다.

1996년 출간돼 100만 부가 나간 김정현의 ‘아버지’는 이듬해 제15대 대선 분위기에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신간은 한 해 장사’라는 통설을 뒤집고 ‘아버지’는 외환위기와 맞물려 1997년에도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여기에 그해 이문열 씨의 ‘선택’이 40만 부 이상 나가면서 소설 바람을 더했다.

2002년은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의 독서 캠페인 덕분에 독서 열풍이 불었던 해. 공지영 씨의 ‘봉순이 언니’(100만 부), 박완서 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90만 부), 황석영 씨의 ‘모랫말 아이들’(50만 부) 등은 대선 이슈에 흔들리지 않고 판매됐다.

대선이 없는 해의 소설 판매도 대선이 있는 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5년의 경우 양귀자 씨의 ‘천년의 사랑’이 90만 부, 1998년에는 양 씨의 ‘모순’이 63만 부, 김주영 씨의 ‘홍어’가 10만 부 나갔다. 2000년 조창인 씨의 ‘가시고기’가 98만 부 팔렸으며 2001년에는 최인호 씨의 ‘상도’(제1권·80만 부)와 김하인 씨의 ‘국화꽃 향기’(22만 부)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4년에는 김훈 씨의 ‘칼의 노래’가 33만 부, 2006년에는 공지영 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55만 부 판매됐다.

○ 2007년은 한국문학 르네상스의 해

2007년 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문단에서는 ‘한국문학 르네상스’의 해로 꼽고 있다. 김훈 씨의 ‘남한산성’이 출간 석 달 만에 20만 부를 넘겼으며 신경숙 씨의 ‘리진’도 10만 부 팔렸다. 김별아 씨의 ‘논개’도 출간 한 달도 안 돼 7만여 부 판매됐다. 황석영 씨가 최근 ‘바리데기’를 냈고 박완서 씨의 소설도 가을에 나올 참이어서 “올해를 위해 작가들이 기다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만큼 한국 소설 시장에 대한 전망도 밝다.

평론가 신수정 씨는 “소설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하게 될 때 읽게 되며 사회 현실이 다이내믹하게 전개될 때는 그런 문학적 철학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이런 선입관과 달리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 별로 휘둘리지 않으며 한국 소설은 대선 등 국가적 이슈와는 상관없이 제 독자를 갖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최형욱(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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