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삼풍백화점’은 정이현(35) 씨의 자전소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소속’이 되어 국립중앙도서관을 갔다가 삼풍백화점으로 향하는 여자는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어딘가에 적(籍)을 둬온 관성 때문에 좀 속물스러운 치과의사와 맞선을 봤다고 해서 대단한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평탄하게 자란 중산층 장녀가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했는가를 보여준다.
많은 것이 주어진, 안온한 가정에서 자라난 강남 소녀가 어떻게, ‘상처로부터 솟아난다’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는지를.
정 씨의 새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은 “콤플렉스 없는 세대”(평론가 김병익)의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 세대는 ‘호출기에서 핸드폰으로, 아이러브스쿨에서 미니홈피로 장난감을 바꾸고’(‘삼풍백화점’) ‘스타벅스의 아이스모카를 마시고 국산 맥주보다 이천 원 더 비싼 벨기에산 호가든을 주문하는’(‘오늘의 거짓말’) 젊은이들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삶은 확실히, 선배 작가들이 짊어졌던 전쟁의 공포나 체제에 대한 저항과는 구별된다.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소설은 앞선 한국문학과 선을 긋는다.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발칙한 위악을 통해 기성 문학에선 낯선(그러나 현실과 너무나 닮은) 여성상을 묘파한 정이현 씨. 단편 10편이 묶인 ‘오늘의 거짓말’은 여전히 발랄하고, 재미있고, 그 세대의 실제 삶과 매우 닮아 있지만, 좀 더 ‘문학적’이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맞선본 여자에게 무덤덤하던 남자가 “이번에는 남자친구와 정말 잘해 보고 싶어 하는” 전처를 따뜻하게 보듬는다든지(‘타인의 고독’), 대학 동기가 소녀 시절 이후의 기억을 잊은 것을 알고, 자신만이 되새길 수 있는 동기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만남을 이어가는 ‘위험한 독신녀’ 같은 소설이 그렇다.
다시 자전소설 ‘삼풍백화점’으로 돌아가서,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대졸 실업자’의 막막함을 나눠가졌던 동창이 백화점에서 죽어버려서다.
무엇이 글 쓰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모든 작품을 통한 정 씨의 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