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父女 명창의 어화둥둥 창극사랑가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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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사랑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아버지와 딸은 마치 연인 같았다.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청하자 두 사람은 판소리 ‘춘향가’ 중 이도령과 춘향이가 부르는 ‘사랑가’로 호흡을 맞췄다. 부채를 폈다가 접고,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부녀의 모습은 정답기 그지없었다.

“사랑가는 원래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부르는 건데. 뭐 아버지와 딸도 괜찮지요.”

1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2280-4115)에서 공연하는 창극 ‘시집가는 날’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소리꾼 왕기철 씨. 마흔네 살에 새신랑 역을 맡은 그에겐 또 하나의 경사가 생겼다. 바로 둘째 딸 윤정(17·혜원여고 3년) 양이 최근 제23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85년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아버지 왕 씨는 박동진, 김소희 명창이 심사를 맡은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다. 딸까지 상을 받았으니 요즘 국악계에서 보기 드문 ‘부녀(父女) 명창’이 탄생한 것이다.

예술학교 안 보내고 직접 가르쳤죠… 레슨비 굳잖아요

왕 씨는 동생 왕기석 씨와 함께 국립창극단에서 ‘형제 명창’으로도 유명하다. 형제는 각각 2000년과 2005년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형은 목을 타고났고, 동생은 연기력이 출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창극 ‘시집가는 날’에서 형은 김판서 댁 아들 미언으로, 동생은 맹진사 역할로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판소리 명가’에서 자란 윤정 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윤정 양은 “평소엔 친구 같은 아빠지만, 소리를 배울 때는 북채로 발바닥을 때리는 엄한 아빠”라고 말했다. 국악중고교도 다니지 않고 일반학교에 다니며 국악경연대회에 입상한 것도 이례적인 일. 아버지 왕 씨는 “레슨비가 굳기 때문에 직접 가르쳤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어릴 적부터 아빠가 나오는 창극이 너무 재밌었어요. 무대도 생동감이 넘치는 데다 소리 하나하나가 가슴에 확 와 닿았거든요. 같은 작품을 서너 번씩 보러 다녔지요.”

창극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현대화 길 찾을 거예요

윤정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국립창극단 창극무대에 데뷔했다. ‘심청전’에서 아버지는 심봉사, 딸은 아기 심청 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이후 윤정 양은 ‘춘향이와 몽룡이의 사랑이야기’, 창작판소리 ‘10대 애로가’ 등에서 어린이 창극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창극은 종래의 ‘일인입창(一人立唱)’ 판소리를 여러 명의 배역으로 나눠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종합예술이다. 1960년대까지 여성 국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는 안숙선 명창을 비롯한 국립창극단 배우들에 의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왕 씨는 “창극은 고리타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의 음악과 스토리가 담긴 전통 오페라 또는 뮤지컬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면서 “서양의 바로크 오페라도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것처럼 춘향전, 심청전도 잘 연출한다면 세계에서 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정 양은 기말고사 기간인 지난 주말에도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을 찾았다. 왕 씨는 딸에게 “창극을 볼 때는 아빠만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손짓, 발놀림 하나까지 잘 살펴봐라. 언젠가 네가 서야 할 무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정 양은 “판소리 공부와 함께 다양한 예술을 공부해 창극을 현대화할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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