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뿌린 대로 거두고 거둔 대로 뿌리고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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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어떤 프로 바둑기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승률이 대단히 높은 기사로 저 같은 아마추어 바둑 팬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지요. 아니 바둑의 신은 따로 있는 것 같으니까 천사라고나 할까요.

천사는 맥주를 조금씩 아껴 가며 마셨습니다. 전 그게 또 참 좋았습니다. 즐길 줄 알고 참을 줄 알고 음미할 줄 아는 게 많고…덮어놓고 다 좋았습니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에게 취미가 뭔가 물었습니다. 그는 즉각,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바둑입니다.”

나는 웃었습니다.

“그건 제 취미인데요.”

그는 웃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럼 일이 끝나고 쉴 때나 뭔가 오락이 필요하거나 기분 전환을 할 때 바둑을 둔다는 겁니까?”

“바둑을 두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두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도 가고 바둑 책도 읽고 한다는 거죠.”

“글쎄, 그게 제 취미라니까요.”

“저도 정말 그렇습니다.”

나는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는 공식 대국이 없는 날에는 따로 마련한 연구실에서 다른 프로기사들과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늘 바둑에 관한 걸 생각하고 있으시겠네요. 직업도 바둑, 공부도 바둑, 취미도 바둑, 자나 깨나 바둑… 안 지겨우세요?”

“지겹긴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이는 못 이기는 거죠.”

나는 승률이 80%나 되는 천사를 쳐다보았습니다.

“승부욕은 이겨도 이겨도 충족이 안 되는 욕망인가 보네요.”

이번에는 그가 침묵했습니다. 그는 천천히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어 약 먹듯 삼키고는 말했습니다.

“제가 이기고 싶다고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집중하고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노력이 성적으로 반영되는 데 1년쯤 걸리더군요. 지금 제 성적은 작년에 공부한 결과입니다. 오늘 마냥 놀아 버리면…내년 오늘 경기에서 저는 분명히 질 겁니다.”

그 뒤부터 나는, 나의 오늘이 지나간 어느 날의 결과인지 가끔 생각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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