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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18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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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뿐만 아니다. 서울 여성들의 패션은 뉴요커의 그것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서점에는 뉴욕을 테마로 한 여행서나 여행에세이가 넘쳐난다. 테라스 카페도 조금씩 늘어가는가 하면, 회사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단체 주문해 마시면서 아침 회의를 연다. 대체 뉴욕이 뭐길래 서울이 뉴욕에 풍덩 빠진 걸까?
뉴욕은 부산이나 대구보다 가깝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부산이나 대구의 명소를 묻는다면 과연 몇 개나 댈 수 있을까. 그러나 뉴욕은 다르다. 뉴욕의 명소? 킹콩이 올라갔으며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남녀 주인공이 재회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해리와 샐리가 거닐던 센트럴 파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의 친정 브로드웨이, 뉴욕현대미술관,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있었던 그라운드 제로….
뉴욕은 스타일이다. 서울 사람들은 뉴욕을 스타일로 즐긴다. 네이버 추천검색어로 도쿄스타일, 파리스타일, 서울스타일은 없지만 뉴욕스타일은 있다. 짧은 볼레로 재킷에 얇은 소재의 긴 티셔츠, 스키니진을 입고 플랫슈즈에 빅백을 매치하는 것. 이것은 2007년 서울 거리를 평정한 뉴욕스타일 패션의 전범이다. 캘빈클라인 청바지나 리바이스 501처럼 특정 아이템이 유행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한 도시의 스타일이 모든 트렌드를 독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말 오전, 부지런히 브런치 카페를 찾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뉴욕’을 누리기 위해서다. 이태원에 있는 뉴욕스타일 브런치 카페 ‘수지스’는 9시에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로 가득 차며 정오가 채 되지 않아 긴 대기줄이 형성될 정도다. 이 카페는 2년 전 서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 미국 가정식을 제공하자는 컨셉트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인 손님이 더 많다. 브런치 카페를 즐겨 찾는다는 전모(28•여) 씨는 말한다. “외국인들과 섞여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 내가 참 멋져 보여요.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멀리까지 오는 거죠. 그리고 친구들한테 ‘점심 먹자’고 하는 것보다 ‘브런치 먹자’고 하는 게 훨씬 있어 보이잖아요!”
그러나 뉴욕스타일 아래 소비되고 있는 서울의 뉴욕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전세계 인종이 모여 살고, 월가의 거부에서부터 홈리스까지 뒤섞여 사는 뉴욕은 참으로 다양하며 그때그때마다 쉼 없이 변한다. 이처럼 다양할진대 과연 무엇을 뉴욕스타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1인당 2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음식이 서울의 브런치지만, 진짜 뉴욕의 동네 브런치는 커피를 포함해 4~5달러에 불과하다. 서울은 뉴욕을 섹스 앤 더 시티와 캐리 브래드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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