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이 책]헌법 다시 보기 vs 헌법과 미래

  • 입력 2007년 4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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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 제의를 철회하는 대신 18대 국회 초반부터 개헌 논의를 펼치기로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번 개헌 논의에서는 국민의 주체적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개헌 문제를 연구해 온 두 그룹의 학자들이 ‘헌법 다시 보기’(창비)와 ‘헌법과 미래’(인간사랑)를 한 달여 사이를 두고 출간했다.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양 그룹의 대표 필자들이 쓴 상호 비판적 서평을 나란히 싣는다.》

▼헌법 만능주의에 빠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 제의가 정치적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처음부터 헌법 제정 권력자인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탓이다. 1987년 현행 헌법이 개정될 때 시민사회를 철저히 배제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할 뻔했던 해프닝이었다. “대선에 임박한 개헌으로는 결코 바람직한 헌법 체계를 이룰 수 없다”는 이 책의 주장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책은 미래를 위한 헌법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헌법 읽기의 권력과 헌법 담론을 정치권에서 끌어 내려 시민사회로 되돌려주는 ‘권력의 민중화’를 강조한다. 주권자 국민이 조응하지 않고 외면한 헌법은 ‘헌’ 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시민사회의 헌법에 대한 요구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헌법 민주화의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이와 동시에 다른 나라의 헌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헌법을 성찰하고 보완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듯이, 평화주의나 문화국가의 관점에서 헌법을 숙고하는 일뿐만 아니라 권리장전의 현대화도 우리 헌법이 당면한 과제 중 하나다. 우리 헌법도 명시적으로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이 아니라 외국인도 포함하는 ‘모든 사람’으로 인정하고 언어와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이 외에도 값진 제안이 많이 담겨 있다. 시민의 의사소통적 권력을 강조하는 심의민주주의의 정신을 구현한 시민의회, 헌법의 남성성을 해체하고 여성, 소수인종, 장애인 등 소수자의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헌법의 보편주의 구현 등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헌법의 과잉’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1990년대 시민운동의 정체성(停滯性)을 새로운 헌법의 제안으로 타개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이 책도 인정하듯이, 참여연대는 총 27건의 헌법소원에서 겨우 2건만 위헌 판결을 받았다. 헌법은 만능의 요술 주머니가 아니다. 모든 사회적 쟁점을 헌법 체계의 문제로 귀착시키는 헌법 만능주의는 오히려 헌법의 위상을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책은 ‘공급자 중심의 헌법 개정 논의’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헌법 개혁 논의’로 발상의 전환을 꿈꾼다. 그러나 국민은 단순한 헌법의 수요자가 아니다. 국민이 일상적 피치자인 동시에 궁극적 통치자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헌법을 권력자의 시혜(施惠)로 착각하게 된다.

이제 시작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책을 통해 ‘주권자 국민’이 시민적 차원에서 어떤 헌법을 모색할 것인지를 겸허하게 성찰해야 한다.

조지형(미국헌정사) 이화여대 교수

▼건국헌법 기원 더 깊이 연구해야▼

노 대통령의 개헌 발의 및 철회 논란의 의미는 무엇보다 헌법 개혁 문제가, 좋은 사회를 위해 우리가 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사회적 정치적 국민적 의제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일상의 시기에 개헌 문제를 놓고 모든 정당 간에 민주적 합의를 도출한 것은 건국 이래 최초였다는 점에서 미래를 향한 노 대통령의 기여는 의미가 크다.

그동안의 헌법 합의는 항상 4·19혁명, 10·26사태와 서울의 봄, 6월항쟁과 같은 격변적 사태 이후의 사후(事後) 행위였다는 점에서 정당 간 사전 합의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서 갖는 정치적 무게와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헌법 논의의 시민화 계기에 맞추어 출간된 ‘헌법과 미래’는 헌법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현안으로 대두한 조건에서 7인의 헌법학, 정치학, 역사학자들의 시평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최대 덕성은 헌법 문제를 법원과 재판을 위한 판결문이나 강의와 고시를 위한 규범과 정전의 영역에서 사회·정치 현실과의 소통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회의제가 저자들의 개입을 통해 헌법의 차원으로, 또 반대로 헌법의 많은 내용이 사회 현실 속으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왕래를 시도하고 있다. 책의 부제처럼 이제 헌법이 ‘시평’의 대상이 될 만큼 헌법 논의의 문턱을 크게 낮춘 것이다.

두 번째 미덕은 학제적 접근이다. 민주화 이후 국가와 사회 집단, 국민 성원의 구체적 행위를 규율하고 개입하는 헌법은 이제 특정 분과 학문의 규범학 영역에 머물 수 없는,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을 담아내는 실천학이자 인간학으로 변전되고 있다. 발랄한 헌법적 상상과 대안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이 책의 학제적 접근은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미덕이 된다.

구체적 내용의 경우 워낙 짧은 단평, 단상, 칼럼들을 묶은 책이라서, 또 글과 글 간에 정반대로 충돌하는 내용도 적지 않아 평가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동안의 자료 수집과 전문적 연구를 통해 수정되거나 진전된 내용은 좀 더 깊은 연구 후에 기존 통념을 반복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건국헌법의 기원 정신 역사 체제에 비추어 단지 조문화 작업만을 담당했던 유진오를 ‘건국헌법의 아버지’로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대안은 정당 학계 시민사회가 두루 참여하는 ‘개헌을 위한 국민회의’가 의회 내에 설치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오랫동안 헌법 개혁을 주장하며 같은 견해를 펼쳐 온 평자로서는 전적으로 공감을 표한다.

박명림(정치학) 연세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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