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30>앤드루 카네기 자서전

  • 입력 2007년 3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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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테이스 아메리칸’지에서 우연히 한 줄의 격언이 눈에 띄었다. ‘옷감을 짜고자 기회를 노리면 신들은 실을 주게 된다.’ 이 구절은 나를 위해 직접 주어진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것은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정말로 신들은 적당한 형식으로 실을 갖춰 주었다.》

앤드루 카네기는 사상 세계의 다섯 번째 부호로 손꼽힌다. 실로 대단한 부를 쌓은 셈이다. 그러나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막대한 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썼느냐는 점이다. 부의 사회 환원,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 그는 부를 사회에 되돌려야 하는 부자의 도덕적 책무를 맨 먼저 주장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다.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덤펀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토끼를 길렀는데, 새끼가 태어나면 이름을 붙여 준다는 조건으로 친구들에게 토끼풀을 구해 오도록 했다. 이 때 이미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사업적 수완이 드러난 셈이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치를 잘 깨닫고 실천한 때문이 아니라 이치를 깨달은 사람을 선별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네기가 가족을 따라 미국 피츠버그로 건너온 것은 1848년, 13세 때였다. 그는 면직물 공장에서 일하다가 전신국으로 일자리를 옮긴다. 전보를 배달하는 일이었는데,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상황이 젊은이들에게 참고가 될 듯하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붙잡지 못하는 것은 큰 실수다. 일자리가 주어졌을 때 머뭇거리다가는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이 말처럼 카네기는 주어진 기회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철도회사의 전신기사로 채용된 것은 1853년이었다. 1859년에는 피츠버그 지부장에 오른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다가 독자적인 사업을 위해 1865년 봉급자 생활을 마감한다.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좁은 세계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카네기가 강철 사업을 시작한 것은 1875년. 사업은 번창해 그는 막대한 부와 함께 강철왕의 자리에 오른다. 1892년 세계 최대의 ‘카네기 강철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1901년 카네기는 또 한 번 큰 결단을 내린다. 연간 4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회사를 U S 스틸사에 넘긴 것이다. 이는 오직 부의 분배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은퇴한 뒤 18년 동안 저 위대한 업적의 막이 오른다. 이른바 ‘부의 복음’이었다.

카네기는 앤드루 카네기 구제기금 설치, 공공도서관 건립, 카네기협의회 설립, 대학교수 연금 설립, 카네기공과대, 카네기교육진흥재단 설립 등에 생전에 쌓은 부의 90% 이상을 내놓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 과감한 도전과 용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는 책의 전편을 통해서 읽는 이를 감동시킨다. 그것은 오직 위대한 인간의 결단과 정직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가 생전에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참다운 부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 앞에 내보였다.

권준환 전 롯데호텔 감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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