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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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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나를 심어 놓은 거야. 여러 해 동안 잠을 자고 나서 땅을 뚫고 나와 보니 집 안이네.” 부모님이 이것을 아시면 당장 나무를 베어 버릴 겁니다. 나무가 자라서 집을 다 부수게 될 테니까요. 아이는 저녁 식사만 끝나면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립니다.
나무가 청딱따구리나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울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무는 자라고 또 자라서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합니다. 나무는 숲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싱그러운 숲의 냄새에 마음이 울렁거립니다. 집이 부서지지 않도록 나무를 베어야 하는 부모님, 숲의 생명력에 매혹된 아이, 우리는 그중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할까요? 도시와 숲을 마음속에 함께 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앙상한 나뭇가지들뿐인 2월의 황량함 때문일까요? 차디찬 건물들과 무수한 자동차와 부산한 사람들의 회색 도시 풍경을 내다보면서 문득 방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나무를 상상합니다. 한밤중 어둠 속에 누워 있으면 나무가 된 몸 속에 수액이 차오릅니다. 우리가 급여통장이나 주식이나 세금이나 아파트 가격 같은 숫자에 몰두해 있을 때도 잔뿌리로 저 깊은 땅속을 더듬으며 물을 길어 올리고 있는 나무는 수천 년 전부터 땅과 하늘을 잇는 생명의 사닥다리가 아닐까요? 주제넘은 문명이 나무와 자연을 이기고 말겠다고 기를 씁니다. 우리는 항상 실패한 자리에서도 하늘로 솟는 나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건 딴 얘기지만요, 미나리꽝과 잔솔밭 야산이던 강남땅에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한 대통령은 왜 그 어딘가에 센트럴파크만 한 숲은 만들지 못했을까요? 균형발전을 위해 신행정도시를 건설하는 대통령은 어딘가에 그만한 넓이의 숲을 만들 생각은 왜 해 보지 않았을까요? 북녘 동포들에게 비료만 보내지 말고 하늘을 찌를 듯 자라날 나무의 묘목을 몇백 트럭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성급하게 자라나는 봄의 몽상이 싹둑 잘릴까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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