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들 두뼘 컸구나… 4집 앨범 낸 힙합그룹 ‘에픽 하이’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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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앨범을 들고 돌아온 ‘에픽 하이’의 멤버들. 왼쪽부터 DJ투컷, 타블로, 미쓰라 진. 김범석 기자
4집 앨범을 들고 돌아온 ‘에픽 하이’의 멤버들. 왼쪽부터 DJ투컷, 타블로, 미쓰라 진. 김범석 기자
실연을 당한 걸까? 사업에 실패한 걸까? 세상 모든 근심을 떠안은 듯 무거운 표정을 한 세 청년.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이들이 내민 것은 검은색 앨범이었다. ‘아이 리멤버’, ‘평화의 날’, ‘플라이’를 부르며 발랄하게 뛰어놀던 3인조 힙합그룹 ‘에픽하이’는 23일 4번째 앨범 ‘리매핑 더 휴먼 솔’을 내놓으며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하다. “이젠 남성미가 풍겨요”라는 농담에도 장난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앨범 작업 하면서 나이도 먹고 철도 들고…. 4년간 활동을 하면서 성숙해졌지만 동시에 변하기도 했죠. 사람들은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데 사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원치 않아요. 우리는 과거가 아닌 이상을 향해 달려가고 싶으니까….”(타블로)

“‘리매핑 더 휴먼’은 저희 데뷔 앨범 ‘맵 오브 더 휴먼 솔’을 보고 만들었어요. 그간 얼마나 많은 걸 배웠는지 지도에 다시 펼치고 싶었죠.”(DJ투컷)

검은색의 의미는 바로 부담이었다. 2005년 3집 타이틀 곡 ‘플라이’가 각종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그토록 원하던 스타가 됐지만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 팬들의 기대치, “래퍼가 왜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느냐”는 식의 정체성 추궁 등 성장통이 뒤따랐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음악만 하자”를 외치지만 이들의 속마음은 ‘제대로 걸어온 걸까’라며 뒤돌아볼 뿐이다.

“하지만 비관적이진 않았어요. 새 앨범을 들고 나오는 우리를 위해 많은 분이 기다린다는 걸 생각해 보니 기적 같기도 하고…. 그간의 치열한 고민들이 헛되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미쓰라 진)

이들의 고민은 전보다 묵직해진 앨범에 녹아들었다. 27곡을 두 장의 CD에 담은 4집은 어둡고 강렬하다. 타이틀 곡 ‘팬(Fan)’에 대해 묻자 이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믿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듯, 소유하고 싶지만 인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노래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앨범 성격과 가장 어울리는 ‘혼’은 에미넘의 ‘루즈 유어셀프’를 연상케 하듯 강렬하고 거칠다. 그나마 가장 발랄하다는 ‘러브 러브 러브’ 역시 가사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소속사 대표께 들려 드렸더니 ‘멜로디는 흥겨운데 가사가 왜 이리 슬프냐’며 우셨대요”라고 이들은 전한다. 과거 발랄한 ‘악동 3인방’에서 ‘진지 3인방’이 된 듯하다.

“4집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재미’인 것 같아요. 우리에겐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음악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재미있는 것을 자꾸만 잊으려 해요. 대단한 판매량보다 우린 그저 많은 사람이 이 앨범을 통해 잃었던 ‘재미’를 찾았으면 해요. 음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하하.”(타블로)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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