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내안에 숨은 야수 이빨을 드러내다… ‘천사의 발톱’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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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돌연변이 천사는 발톱이 자랍니다. 야수의 그것처럼 무시무시한 발톱이죠….”

한 노인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천사의 발톱’은 가볍고 발랄한 핑크빛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의 홍수 속에서 모처럼 선보이는 어둡고 슬픈 누아르 분위기의 창작 뮤지컬이다. 잔인한 밀수조직원 이두가 우발적으로 착한 쌍둥이 형 일두를 죽인 뒤 일두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독특한 설정의 이야기다. 연극 ‘남자충동’,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으로 호평받았던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43) 씨가 처음으로 극본과 연출을 맡은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마니아들의 관심을 끈다. 15일 밤 ‘천사의 발톱’ 연습실을 찾았다.》

● 강렬한 비트음악… 인간내면 이중성 다뤄

“돌이킬 수 없는 발길/거부할 수 없는 충동/뒤틀려 비틀린 욕망/내 안에 숨어 있던/길들지 못한 야수/이빨을 드러낸다/……/애써 감춰 왔던/내 안의 늙은 야수/발톱을 새로 간다/….”

더듬거리는 말투, 안경 뒤에 가려진 순한 눈매로 바보같이 보일 만큼 착하던 ‘일두’가 격정적으로 1막의 마지막 곡 ‘질투’를 부른다. 격렬한 비트의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고 “나-는-내-가-무-섭-구-나”로 노래를 끝맺는 순간, 천사처럼 선량하던 일두는 어느새 질투에 불타올라 이글거리는 눈매를 한 쌍둥이 동생 이두가 되어 있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이 하이드로 처음 모습을 바꾸는 ‘얼라이브(Alive)’ 대목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조명도 음향도 의상도 갖춰지지 않은 연습실이었음에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만큼 긴장을 빚어냈다. 10분간 휴식. 1인 2역으로 일두와 이두를 연기한 김도현(30)의 얼굴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졌다.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숨긴 채 일두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이두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버려진 아기 ‘태풍’을 데려다 친동생처럼 키운다. 하지만 청춘을 희생하며 키워 낸 태풍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가까워진 모습을 본 이두는 질투에 사로잡혀 난폭한 본모습으로 되돌아온다.

● 유준상, 3년 만에 뮤지컬 무대 컴백

1막 대부분은 일두의 모습으로, 2막은 거의 이두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극단적인 두 캐릭터를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3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유준상과 신인 김도현이 더블 캐스팅됐다. 김도현은 1960, 70년대 명배우였던 고(故) 김동훈 실험극단 대표의 아들. 얽히고설킨 악연으로 등장인물이 모두 파멸에 이르는 이 작품은 얼핏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로도 읽히지만 실은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젊음과 열정, 자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질투.

연출가 조 씨는 “이 작품 속에서 20년간 깊숙이 숨어 있던 이두의 야수성을 다시 불러낸 것도 결국은 질투”라며 “갖지 못한 것, 갖고 싶었던 것, 어쩌면 가질 수도 있었던 것에 대한 질투를 통해 인간 속에 잠재된 다양한 본성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23일∼3월 4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3만5000∼6만 원. 02-764-876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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