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작은 무대도 정성다하면 하늘이 감동하지유”

  • 입력 2006년 11월 30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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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끝자락에서 누군가 달려나온다. 내려오기도 전에 걸걸한 충청도 사투리부터 내지른다. 소리꾼 장사익(57)이다.

"아이고~ 눈 오는 날 잘 오셨어요. 정말 큰 손님이네. 첫 눈 오는 날 누가 날 찾아올까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이랴~"

'사실상' 첫 눈이 내린 지난달 30일 덕분에 기자는 그에게 특별한 손님이 돼버렸다. 금의환향한 자식 반기듯 기자를 얼싸안는 그에게 냄새가 배어난다. 진한 된장찌개 같은 구수함, 이것이 소리꾼 장사익의 인사법이다.

"지는 옷도 추리하게 입고 다니잖아유. 아 만날 버스만 타고 댕겨도 날 알아보는 사람은 1년에 3,4명 있을까 말까유. 그러다보니 내 몸에서 사람냄새 나는 건 당연하지유."

마치 속세를 떠난, 아스팔트 바닥에서 10cm 위에 떠있는 사람 같지만 사람들은 12년 간 그의 노랫가락에 맞춰 울고 웃었다. 1996년 첫 콘서트 '하늘가는 길' 이후 2년 마다 갖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서트는 10년 째 매진 사례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10일 5집 발매 기념 '사람이 그리워서' 콘서트는 이미 한 달 전 2회 공연 6000석이 전부 매진 됐다. 공연 관계자들도 '미스터리'라 말하는 그것, 바로 장사익의 힘이다.

"집에서 청둥오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홍수로 수놈이 떠내려가니까 암놈도 가을에 집을 나가버렸어유. 그걸 보면서 얼마나 그리웠으면… 탄식이 절로 나왔지유. 가수들 즐비한데도 그 많은 시간을 들여 제 공연장을 찾는 것은 내 노래에 대한 그리움 때문 아닐까유?"

1994년 45세의 늦은 나이로 노래를 시작한 그는 시대 부적응자처럼 '거꾸로' 음악에 빠져 있다. 컴퓨터는커녕 휴대전화기도 없다는 그는 시골 장터, 가족 이야기 등 구수한 옛 것을 노래해왔다. 그에겐 젊은 가수들의 '소몰이 창법'도, 박자 개념도 없다. 그저 진심어린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요즘 노래유? '아이쿠' 머리 아파유. 예술은 짧고 굵은 게 아니라 가늘고 긴 것인디 요즘 가수들은 유행만 ¤으려 해 안타까워유. 작은 무대도 정성을 담아 노래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니까유. TV도 안 나가는데 6000석 매진이라니… 내가 마술을 부린 것도 아니잖아유."

내친 김에 그가 CD를 내밀었다. "이번 공연에서 부를 신곡들이에유"라며 소개한 음반은 3년 만에 발표되는 5집이다. "아줌마 희망 한 단에 얼마래유? / 아 그냥 채소나 한 단 사가유"라며 시장 상인과 주고받는 노래 '희망 한 단'부터 도시인들의 삶을 노래한 '자동차'. 시골 장터 풍경을 노래한 '사람이 그리워서' 등 9곡을 들려준 그는 "봐유, 엉뚱한 노래지유?"라며 웃는다.

그는 아직도 1992년 12월 31일을 잊지 못한다. 1967년 상고 졸업 후 보험회사, 카센터 등 15군데 회사에서 일한 그가 "눈 딱 감고 3년 간 음악만 해보리라" 다짐한 것. 그 후 1994년 홍대 앞 클럽에서 800명 앞에서 첫 공연을 벌인 그는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꼈다"며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왔다. 20년 넘는 세월을 에둘러 온 것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껄걸 웃으며 사투리를 '징하게' 늘어놓았다.

"나는 나이들어 노래하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유. 이쁘고 젊은 가수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걸 보란 듯이 깨고 싶어유. 80먹은 꼬부랑 할배가 지팡이 들고 무대에서 마이크랑 기싸움 한다고 생각해봐유. 얼마나 멋있는지… 아, 쑥스럽네유. 이런 얘기 그만하고 우리 청국장 한 그릇 먹으러 가유."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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