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은미]현대미술이 어렵다고요?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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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은 가히 비엔날레 열풍이었다.

미술계는 갈수록 외롭고 힘든 모습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굵직굵직한 대형 비엔날레는 수십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이달 중순 막을 내린 광주 비엔날레는 65일의 행사기간 중 관객 70만 명을 훌쩍 넘겼다. 시민 참여형 비엔날레로 위상을 높인 기획력도 평가할 만하지만, 현대미술에 대해 대중이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미술계에서 회자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작품 제목은? ‘무제’가 답이란다.

‘무제 2’ ‘무제 3’이라는 제목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현대미술의 위압적인 태도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여실히 보여 주는 블랙유머다.

하긴 ‘쓰레기’도 미술의 소재가 되는 시대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오물을 늘어놓더니, 심지어 이상한 문구가 새겨진 단어나 비디오 사진 등이 버젓이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페인트칠한 알몸으로 길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도대체 이런 난해한 행위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져야 할 부서진 자동차 폐품이나 고철 덩어리를 미술관에서 보는 느낌은 또 어떤가.

‘환경 파괴와 자원 보존’, 이렇게 목청을 높이며 부르짖는 거창한 구호보다 단 한 점의 미술작품에서 발하는 설득력이 훨씬 강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잠깐, 현대 예술가들은 정말이지 얄미울 정도로 ‘불친절’한 측면이 있다.

세상살이에 무뎌진 우리들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기만 한다. ‘자 보라, 일상 속의 추한 현실을 우리가 감추고 부정한다고 해서 과연 잔인한 진실이 덮이는가’라고.

문화도 ‘쏜살같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청년 문화를 비롯한 반(反)문화, 페미니즘 그리고 제3세계의 문화 등이 사회 표면으로 부상하면서 곳곳에서 다양한 가능성과 소수(마이너리티)의 가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미술계는 인종, 성차별이나 폭력 같은 내용을 담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왜일까? 묵직한 사안을 다뤄 관객에게 한 번 생각해 보도록 권고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인터넷상에서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과 광기(狂氣)를 떠올려 보자. 현대인 어느 누구도 불안이나 욕망 그리고 망상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욱 답답한 것은 그 해답이 바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듯 정신없이 변화하고 곧바로 해석되지도 않는 미술, 이것이 바로 우리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너무 우울해하지는 마시길.

현대미술은 어떤 시대보다 관객과 예술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쉽고도 새로운 길을 열어 놓았다. 최근 첨단 정보기술(IT)의 융합 바람은 예술문화계에서도 새 비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술관에는 로봇이 버젓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뿐인가. 닫힌 공간은 답답하다고 미술관을 뛰쳐나온 레이저 빔이 하늘을 캔버스 삼아 빛의 터치를 물들이고 있다.

그래도 현대미술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대미술은 박제된 미술품처럼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보기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움직이는 전자회화’를 어떻게 감상하던가. 관객들은 게임을 즐기는 기분으로 미디어 아트를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며 같이 놀 수도 있다.

‘미디어아트’가 지금 미술계 안팎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개방성과 탁월한 쌍방향 소통 능력 덕분이다.

시대와 동떨어진 미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므로….

정은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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