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김상미/‘민들레’

  • 입력 2006년 1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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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꽃,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 날 그 다음 날 찾아가 보면, 어느 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렇게 일생에 꼭 한 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 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 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 시집 ‘잡히지 않는 나비’(천년의 시작) 중에서》

봄꽃인 민들레가 다 된 가을에 핀 걸 보았어요. 봄에 피고 또 피는 욕심쟁이 꽃일까?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요. 보도블록 틈 가까스로 내민 얼굴로 노랗게 웃고 있었어요. 발자국에 짓이겨진 작은 이파리들이 어깨 부딪치며 기뻐하는 걸로 보아 생애 처음 피운 꽃이 분명했어요. 꽃으로 태어나 나비 한 마리, 벌 한 마리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돌아오면서 자꾸만 뒤돌아보았어요.

걱정 말라는 듯, 벌 나비 없어도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 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하고 있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었어요. 작은 봄꽃 하나 가을서리 맞으며 겨울로 건너가고 있었어요.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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