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6년 美생어 ‘피임술 전파’ 체포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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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사거나 피임법을 가르치면 범죄자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국이라는 미국에서 불과 100년 전에 있었던 얘기다.

인류는 “산아 제한만이 세계를 구할 것”이라는 인구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결혼한 여성의 삶은 오로지 섹스와 출산뿐. 그들은 오직 ‘아이 낳는 기계’에 불과했다.

마거릿 생어도 18번을 임신하고 7번을 유산한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었다. 당시 기혼 여성들은 이처럼 많은 출산으로 몸이 상해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생어가 뉴욕 슬럼가의 간호사로 일했을 때, 임산부들은 그에게 빌었다.

“몸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발 더는 임신을 하지 않게 해 주세요.” 죽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자꾸 꿈에 아른거렸다.

그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피임법을 연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여성 잡지를 출간하는가 하면 산아제한을 위한 진료소도 열었다.

하지만 당시 법은 피임법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던 터. 이 진료소 때문에 생어는 기독교계와 정치인들로부터 온갖 박해를 당했다.

1916년 10월 26일 생어는 마침내 ‘공안질서 방해죄’로 체포됐다. 그가 체포될 때 진료소 밖에서 기다리던 많은 여성이 “우리를 두고 가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재판관은 생어에게 “지금이라도 법률을 따르고 진료소를 닫는다면 죄를 면해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지금의 법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맞섰다.

미국 체신청이 ‘풍기 문란’을 이유로 생어가 만든 여성잡지의 배달을 금지하자 생어는 오히려 기뻐했다. “우리 잡지가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 193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피임법의 전파를 허가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57세. 평생의 노력이 결실을 이뤘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은 무엇이었을까. 전기의 발명? 인터넷의 보급? 쉽게 결론내기는 어렵지만 생어가 작은 피임약 하나로 전 세계 여성의 삶을 바꿔 놓은 것도 결코 무시할 순 없다.

그를 두고 당시 선견지명이 있던 미래학자들은 이렇게 전망했다.

“생어가 시작한 운동은 분명 100년이 지나면 세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혁명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8년 그를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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