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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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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남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에 총을 맞자 아내 재클린 케네디는 이렇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5년 뒤 미국인은 재클린을 보며 똑같은 비명을 질렀다. ‘오, 세상에 저럴 수가….’
미국을 놀라게 한 충격적인 소식은 바로 재클린의 재혼이었다.
재키(재클린의 애칭)가 누군가. 미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퍼스트레이디가 아닌가.
이에 반해 재혼 상대인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는 돈은 많았지만 당대 최고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와의 열애 등 잦은 스캔들로 평판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60대의 고령자 아닌가.
62세와 39세의 나이차에 돈 많은 재벌과 퍼스트레이디 출신 여인의 결합이라…. 이들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하지만 재클린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은 후 늘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걱정했고 “미국에선 살기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훗날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재혼을 비난하는 미국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서 재클린은 1968년 10월 20일 오나시스와 결혼식을 치렀다.
당시 동아일보는 ‘궂은 빗속에 웨딩마치-재클린 시집가던 날’로 제목을 달아 결혼식 소식을 전했다.
“고(故)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흉탄에 쓰러져 ‘오, 노’의 비가(悲歌)를 외친 지 만 5년 만에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씨와 그리스 정교회 의식에 따라 결혼식을 올렸다.”
“재클린 여사는 궂은비를 맞아 가며 ‘캐롤라인’ 양과 ‘존’ 군을 데리고 식장에 입장했다.”
“이날 해상 일기가 너무도 불순하여 초호화 요트인 ‘크리스티나’호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려던 두 신랑 신부의 꿈은 하루 연기되었다.”
“결혼식이 올려지는 날 오나시스 씨의 전처 소생인 ‘알렉산더’와 ‘크리스티나’가 아버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한때나마 거절하며 애를 태웠었다. 심지어 두 남매는 새어머니가 될 재클린 여사를 아직 한번도 만나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으로 추론하면 둘의 결합은 그리 축복받는 결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나시스마저 재혼 7년 뒤인 1975년 사망한 것을 보면 재클린은 남편 복과는 인연이 없었는가 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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