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지하드 발언' 논란 일파만파

  • 입력 2006년 9월 15일 1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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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슬람교를 '사악하고 잔인한 종교'로 표현한 옛 문헌의 한 대목을 공개 강연에서 인용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슬람권은 한 목소리로 "존경받는 성직자가 이렇게 발언해 무슬림들이 경악하고 있다"며 교황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발언으로 다음달 예정된 교황의 첫 이슬람국가 방문인 터키행에도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교황은 독일 방문 중이던 12일 레겐스부르크 대학 강연회에서 14세기 비잔틴 제국의 마누엘 팔레올로고스 2세 황제가 페르시아 지식인과 나눈 대화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모하메드가 가져온 새로운 것을 내게 보여 달라. 그러면 당신은 거기에서 사악하고 잔인한 것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칼로 믿음을 전파하라는 명령 같은 것 말이다.' 황제는 지하드, 즉 성전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다."

터키의 이슬람 최고지도자 알리 바르다코글루 씨는 14일 "교황의 발언은 매우 염려스럽고 슬프고 유감스럽다"면서 "만약 이 발언이 기독교 사회가 타인에게 품은 악의, 증오, 적의를 반영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칼로 개종을 강요한 종교는 기독교"라고 덧붙였다.

모하메드 마디 아케프 이집트 무슬림협회 대표는 성명을 내고 "서방 세계가 이슬람에 갖고 있는 왜곡된 생각을 반영한 발언"이라면서 "이런 발언이 서방 국민에 큰 영향을 끼치는 가톨릭 최고 지도자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꼬집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교황은 무슬림들 사이에서도 존경받는 분"이라면서 "논란이 될만한 발언은 피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57개국 협의체인 이슬람회의기구(OIC)도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냈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비판에 가세했다.

비난이 확산되자 바티칸은 14일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성전(지하드)에 대한 깊은 분석도 아니었고 무슬림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발언도 아니었다"면서 "교황은 단지 종교가 폭력의 동기가 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또 "교황은 다른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슬람권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무하마드 아야쉬 알쿠바이시 카타르대(이슬람율법) 교수는 공개서한을 통해 "이런 발언은 문화적, 종교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교황에게 이슬람교에 관한 공개 토론회를 갖자고 제의했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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