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히피 한대수, 마지막 창의력을 쏟다…11집 발표

  • 입력 2006년 9월 12일 1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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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일년 만에 다시 찾은 그의 원룸에는 그가 늘 마시던 커피 대신 시원한 맥주가 있었다. 작곡가 박광현, 밴드 '허클베리핀'의 이기용 등 후배 뮤지션과 함께 그는 초저녁부터 맥주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서울 신촌의 7평짜리 원룸에는 지독한 고독도, 히피 같은 아웃사이더도 보이지 않았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로 대표되는 한국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58)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2년 만의 새 앨범을 발표해요. 돌이켜보면 많은 억압과 통제를 받았지만 베토벤에 비교하면 내 고독은 '병아리 눈물'인 것 같아요. '행복의 나라로' 한 곡으로 가수 인생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양호하잖아요?"

그의 귀에 걸린 낯선 빨간색 안경. "이젠 안경 없인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일년간 13장짜리 박스세트 음반 발매, 자서전 '올드보이' 출간, 영화 '모노폴리' 출연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28일 발매하는 11번째 앨범 '욕망(Urge)'까지.

"이번 음반이 마지막인 듯해요. 목도 쉬고 체력도 바닥났지만 무엇보다 창의력이 다한 것 같아요. 아직도 내 몸 속에선 욕망이 끓고 있지만… 인생이란 원래 슬픈 거잖아요."

그는 DVD 한 장을 꺼냈다. 음반에 수록될 영상들이라는 DVD는 뮤직비디오부터 요리하는 모습까지 그의 일상들이었다.

"성욕, 식욕, 명예욕 등 욕망은 끝이 없지만 다 채우지 못하고 죽는 게 우리 인생이랍니다. 마치 내가 '물 좀 주소'하는 것과 똑같죠. 제 마지막 욕망요? 연애죠. 하하."

새 앨범은 달파란, '어어부밴드'의 장영규 등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다. 타이틀곡인 '바다의 왕국'은 그가 존경한다는 시인 애드거 앨런 포를 기리며 만든 곡으로 우는 듯한 트럼펫 연주와 가래 끓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처절한 시인의 인생을 나타낸 듯 하다. 올 초 모스크바에서 만난 노점상 할머니의 처량함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바부시카(할머니란 뜻의 러시아어)' 역시 구슬픈 아코디언 연주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욕망의 슬픔만 담은 건 아니다. 록 밴드 '두 번째 달'의 멤버인 아일랜드 출신 여성 뮤지션 린다 컬린과 함께 여관방에서 녹음한 포크 록 '오렌지 트리'나 중년 남자의 사랑가인 '올웨이즈', 6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부른 동요 '대통령' 등은 그의 대표곡 '행복의 나라로'처럼 푸근하다.

이제 그는 앞으로 간간히 후배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노래를 부른단다. 그러자 옆에 있던 후배들이 "내년 초 후배 뮤지션이 트리뷰트 음반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뜸 했다. "내가 그런 걸 받을 자격이 있나"라며 너털웃음을 지은 그는 "그저 댄스음악만이 판치는 가요계에 단 10%만이라도 록 음악이 살아있길 바랄 뿐"이란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 그는 "물 좀 주소"를 외쳤다. 여전히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중년의 히피. 그의 욕망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듯하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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