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상큼 깔끔… 2030 그녀들의 아이스크림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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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젤라테리아 구스띠모에서 젤라토를 즐기는 20대 여성들. 원대연 기자
강남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젤라테리아 구스띠모에서 젤라토를 즐기는 20대 여성들. 원대연 기자
“처음엔 상큼하고 뒷맛이 개운한 요거트(Yogurt) 아이스크림이 좋아.”(수리물리학부)

“난 저지방 우유(1.5%)보다도 유지방 함량이 낮은 ‘웰빙 아이스크림’.”(인문학부)

11일 오후 3시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의 젤라토 카페 ‘요나인’. 이화여대 응원단 소속 1학년생 7명이 저마다 아이스크림 예찬론을 펼쳤다. 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은 과자나 사탕과 같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다. ‘자아’를 표현하는 문화코드다.

20, 30대 여성들의 아이스크림 소비문화가 변하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이들의 입맛과 요구를 좇아 아이스크림 시장이 재편되는 양상까지 나타난다. ‘아이스크림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연구가 최민우(44) 씨는 “20, 30대 여성의 아이스크림 소비는 최근 들어 명품화, 다양화, 웰빙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 젤라토 전성시대

아이스크림의 명품화는 ‘젤라토(Gelato)’가 이끌고 있다. 젤라토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총칭하는 용어. 한국 소비자에게 알려진 ‘본젤라또’는 식품회사 기린의 빙과류 브랜드다.

젤라토는 배스킨라빈스 하겐다즈 등 기존의 프리미엄(고급) 아이스크림에 비해 유지방, 당도, 칼로리가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오버런(Overrun·공기함유량)이 낮아 부드러우면서 쫀득하고 차지다. 인공향료나 색소, 방부제도 없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매장에서 원료를 배합해 직접 손으로 만들기에 ‘정성’을 느낄 수 있다. 갓 구워낸 빵처럼.

젤라토는 2003년 초부터 강남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이며 급속히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구스띠모, 요나인, 띠아모, 빨라조 델 쁘레또, 일끄레미노 등 ‘젤라테리아(젤라또 전문점)’임을 내세우는 브랜드만 10여 개에 이른다.

이탈리아 정부가 공인한 젤라토 아카데미 ‘스피가(SPIGA)’를 졸업한 ㈜GP트레이딩 박성진(36) 부장은 “젤라토는 유럽, 호주, 일본 등 세계 70개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최고급 아이스크림”이라고 자랑했다.

○ 개성시대 ‘뭔가 특별해야’

“자∼보세요. 아이스크림만 없으면 마치 지하 동굴 같지 않나요”

11일 오후 6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입구에서 만난 의상 디자이너 강민경(28) 씨는 젤라테리아 ‘구스띠모’를 가리켰다. 강 씨는 아이스크림의 진한 맛도 좋지만 독특한 실내 인테리어와 서비스 때문에 이곳을 더 찾는다. 특히 아이스크림만 달랑 내놓지 않고 미니 콘이나 롤 과자 등으로 멋을 부린 것이 맘에 든다.

강 씨는 “커피도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사람부터 자기만의 향을 찾아 전문점에 다니는 사람까지 다양한 것처럼 아이스크림도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을 여름철 기호식품이 아닌 문화코드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아이스크림 업계도 젊은 여성들의 까다로운 미각과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앞 다퉈 새로운 개념의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파브리의 젤라토 원료를 쓰는 ‘띠아모’는 20여 종류의 생과일 아이스크림을 판다. 계절마다 신선한 제철 과일을 원료로 사용한다고.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 아이스크림을 공급하는 ‘요나인’은 요거트 아이스크림 특화전략을 펴고 있다. 이정원(51) 대표는 “한국인의 입맛이 젖산이 풍부한 김치에 길들여진 점을 고려해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택했다”면서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이 장점”이라고 했다.

구스띠모는 젤라토 종주국인 이탈리아에서도 맛볼 수 없는 제품을 개발해 내놓았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필라델피아 치즈를 사용한 크림치즈 아이스크림, 쓴 맛이 강한 다크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이다.

○ 웰빙시대 ‘건강은 기본’

신학대에 다니는 백수연(27) 씨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잣대는 다이어트와 건강이다. 백 씨는 “살 안 찌고 몸에 좋은 저지방, 저칼로리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는다”면서 “아이스크림도 즐기고 건강도 챙기니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2002년 말 이후 불기 시작한 웰빙 열풍이 아이스크림 시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녹차 아이스크림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차세대 웰빙 아이스크림을 신제품으로 내놓는 곳도 적지 않다.

젤라테리아 중에는 △구스띠모가 검은 깨(세사모), 검은 쌀(리조네로), 화이트 와인(자바이오네) △띠아모가 대추, 유자, 쑥, 둥굴레, 칡, 당근 △요나인은 쌀을 재료로 한 웰빙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 알렉산더-네로도 아이스크림 마니아였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온다.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중국인들이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섞은 ‘얼음과자’를 즐겼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알프스에서 가져온 눈에 꿀 과일 우유 또는 양젖을 섞어 먹었다고 전한다. 악명 높은 로마황제 네로는 눈을 운반하는 군대 책임자에게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녹아버리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이처럼 눈이나 얼음으로 만든 빙과(氷菓)는 고대 중국, 페르시아, 아라비아, 유럽 등에서 권력자의 사치스러운 기호식품으로 출발했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얼음에 소금과 초석(질산칼륨)을 섞어 냉동 냉각시키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아이스크림 시대가 시작됐다. 이어 1800년대 중반 미국에 아이스크림 공장이 등장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아이스크림의 산업화가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냉장고도 없던 1950년대 물에 설탕과 사카린을 섞어 조잡하게 만든 빙과를 얼음을 채운 박스에 담아 행상이 ‘아이스 케키∼(얼음과자)’라고 외치며 팔았던 적이 있다. 1950년대 후반엔 일부 제과점이 제조시설을 갖추고 양질의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으나 양이 매우 적었다. 1970년대 해태제과가 덴마크 호이에사의 제조시설을 들여와 산업형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면서 아이스크림 시장이 대중화됐다.

유지방 함량이 높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은 1986년 명동 사보이호텔 뒤에 배스킨라빈스 1호점이 문을 열면서 처음 소개됐다. 1991년 하겐다즈, 98년 나뚜루 매장이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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