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캘린더]호랑이 처녀 - 인간 총각 ‘눈 맞았네’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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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한 아낙이 떡을 머리에 이고 깊은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지. 호랑이가 말했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옛날이야기. 그런데 이 아낙과 호랑이가 사랑에 빠진다면?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반은 사람, 반은 호랑이’인 딸 ‘호녀’를 낳는다면? 호녀가 자라 인간 남자와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에 빠진다면?

18일 막을 올린 서울시뮤지컬단의 ‘키스 미 타이거’는 ‘사극 모던 코미디’를 내건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다. 최근 소극장용 로맨틱 코미디 창작 뮤지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키스 미 타이거’는 우리 옛이야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감호설화’를 버무려 ‘호랑이 처녀와 인간 총각의 시공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로 소재를 차별화했다.

공항에서 남녀주인공이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한 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옛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두 남녀의 ‘전생’에서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다가 마지막에는 첫 장면인 현대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연과 사랑의 윤회(輪回)를 그린 이 작품의 기본 틀과 이야기 구조는 마치 소극장 코믹 버전의 ‘아이다’를 보는 듯 하다.

히트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등으로 최근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 연출가(극작가)로 떠오른 장유정은 자신이 쓰고 연출한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발랄한 감각을 보여준다.

소심한 남자 김현(이경준)이 씩씩한 호랑이 처녀 호녀(이연경)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사랑하는 사람한테 엿을 선물하는 날이야”하며 수줍게 엿을 선물하는 식으로 요즘 연인들의 ‘밸런타인데이’ 풍속을 녹여내는 등 ‘사극 같지 않은 사극’으로 젊은 관객에게 다가간다. 여기에 힙합을 추는 스님들, 트로트를 부르는 기생 등 ‘감초’역할을 하는 조연 캐릭터들이 수시로 웃음을 자아낸다.

2001년 ‘호랑이 처녀 바람났네’라는 제목으로 초연된 뒤 ‘송산야화’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던 이 작품은 음악도 모두 새로 만들었고 결말도 슬픈 이야기에서 해피 엔딩으로 바꿨다. 국악기와 양악기를 섞어 선보인 트로트부터 재즈, 발라드, 힙합까지 다양한 음악도 빛난다.

다만, 코믹한 부분에서는 좀 더 순발력 있는 연기가, 멜로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좀 더 섬세한 감정 연기가 미흡해 이야기의 강약이 뚜렷하지 않고 작품의 흐름이 밋밋해진 점은 아쉽다. 8월 6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 7시, 일 3시 6시. 2만5000∼3만 원.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02-399-1772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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