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 입력 2006년 1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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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원저·마틴 가드너 주석·최인자 엮음/431쪽·2만3000원·북폴리오(2005년)

‘쉽게 읽고 무겁게 생각하라.’

최근 논술시험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출제 경향이다. 대학들은 짧은 우화나 시(詩)에서도 깊은 함의를 찾도록 요구한다. 논제에 맞는 독해뿐 아니라 창조적 읽기도 필요하다. 의미 맥락을 다각도로 곱씹어 보는 습관이 없다면 얕은 글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세계적 고전의 반열에 오른 철학 동화로서 자연스레 우리의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나 읽는 동화책이라고 가볍게 다룰 일이 아니다. 좌충우돌하는 꼬마 아이의 이상한 여행은 인간의 지적 탐험이자 인생 체험의 상징이다.

저자인 루이스 캐럴은 성직자이며 수학자답게 앨리스를 통해 철학, 문학, 수학의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마틴 가드너는 방대한 주석을 통해 깊이 읽기의 모범을 보여 준다. 영국의 민담이나 동요, 시 등을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비교하면서 당대에 공감했을 법한 풍자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식이다.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는 12번이나 몸 크기가 바뀐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일까’, ‘꿈에 나오는 존재에 불과해’ 등의 말을 반복한다. 자신의 정체성,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철학자들의 오래된 주제이다. 주석을 붙인 가드너는 소크라테스나 버클리의 이론을 덧대어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거리를 보충해 준다.

과학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토끼굴로 떨어지는 앨리스의 낙하 속도는 아인슈타인이 상상으로 실험한 가상의 엘리베이터와 유사하다. 거울나라의 시계는 현실과 반대로 거꾸로 간다. 그래서 이 책이 수많은 타임머신 문학의 효시가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환상은 규칙을 뒤집고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거울 나라에 간 앨리스가 ‘아무도 안 보인다’고 말한 것을 카드 왕은 ‘nobody’를 본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그리스신화에서 율리시스의 말을 따온 것이며, 수학적으로는 공집합이나 영(zero) 개념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또한 불공평하게 케이크를 나누는 사자의 횡포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사자의 분배를 패러디한 것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밖에도 다혈질적인 하트 여왕은 독재정치를, 동분서주하는 하얀 토끼는 소심한 관리들을, 가짜 거북의 눈물은 교육의 문제를 건드린다. 체스 정원을 여행하는 것은 인생이 곧 체스와 같음을 의미한다.

우리 학생들도 겨울방학 동안 앨리스의 여행을 새롭게 따라가 보자. “이런 게 더 흥미로운 인생이잖아!”라고 외친 앨리스처럼 상상과 지식의 새로운 기쁨을 얻기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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