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마법의 힘…‘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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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그림 형제의 모험담을 판타지와 현실 세계의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영화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사진 제공 에이엠시네마
동화작가 그림 형제의 모험담을 판타지와 현실 세계의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영화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사진 제공 에이엠시네마
영화 ‘그림 형제(The Brothers Grimm)-마르바덴 숲의 전설’이 감독 테리 길리엄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영화는 절반의 실망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브라질’ ‘12 몽키즈’를 통해 현대 인간을 통찰하는 삭막한 듯 따스한 시선을 보여준 길리엄 감독. 그가 7년 만에 내놓은 이 영화는 딱 그가 실제로 즐겨 신는 수백 개의 원숭이 얼굴이 새겨진 총천연색 운동화의 느낌이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듯 야단법석을 떨지만 알고 보면 별 게 아닐 수도 있단 말이다.

안데르센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동화작가로 인정받는 독일의 그림 형제. 그들의 과거를 둘러싼 상상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제이크(히스 레저)와 윌(맷 데이먼) 형제는 괴담이 전해지는 외딴 마을을 찾아다니며 마귀를 물리쳤다고 속여 돈을 번다. 하지만 형제는 사기 행각이 들통나는 바람에 마르바덴 마을로 보내진다. 벌 대신, 9명의 소녀가 실종된 사건을 해결해 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형제는 수백 년 동안 죽지 않고 회춘을 도모하는 거울여왕(모니카 벨루치)과 맞닥뜨린다.

‘그림 형제’의 매력은 판타지 세계와 현실 세계가 나누는 대화에 있다. 전설을 우습게 알던 그림 형제(현실)가 마르바덴 숲의 전설을 체험(판타지)하면서 결국엔 전설의 신봉자가 된다. 성장담 같은 영화의 내용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얕잡아 봐야 할지 헷갈리는 작품의 기괴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 ‘빨간 두건’ ‘백설 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개구리 왕자’의 모티프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발견의 즐거움도 준다.

하지만 영화는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So what)?’란 의문을 끊임없이 풀게 만든다. 현란한 비주얼이 거듭되며 한껏 부풀려진 영화의 몸집을 제대로 지탱할 만한 그럴듯한 사유(思惟)의 뼈대가 없는 것이다. 기묘한 이미지는 있되 정작 기묘한 상상력은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침소봉대로 세상을 살짝 현혹하려는 건 영화 속 그림 형제의 소행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모니카 벨루치. 영화는 그녀를 ‘주연’으로 번듯이 내세우건만, 영화 시작 40분이 지나야 딱 5초간 나오는 그녀는 다시 40분을 더 기다려야 ‘본격’ 등장해 “진실은 허구보다 끔찍해”란 한마디를 남기고 또 연기처럼 사라지니 말이다. 18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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