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14>퀴리 부인이 딸에게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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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나 과학 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퀴리 부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노벨상을 한 개인이 두 번씩이나(물리학상, 화학상) 수상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과학자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국 폴란드의 대학 입학이 허락되지 않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의 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을 폭넓게 연구하면서 마침내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파리 소르본대 최초의 여자 교수가 됐던 것이다.

이런 당대 최고의 과학자 퀴리 부인이 대학생이나 연구원들이 아닌 겨우 10대 아이들에게 물리학을 강의했다고 하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과연 그의 수업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퀴리 부인이 딸에게 들려주는 과학이야기’는 퀴리 부인에게서 직접 수업을 들었던 이자벨 슈반느(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자벨 샤반’)라는 여학생의 강의 노트를 그대로 번역해서 책 속에 옮겨 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퀴리 부인과 샤반이라는 학생의 공동 저작인 셈이다. 여기에 담긴 10번의 강의를 통해서 퀴리 부인은 과학자인 동시에 위대한 교사의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되살아난다.

그의 수업은 물리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아이들에게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더 복잡해 보이는 문제의 세계로 아이들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물리학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도록 계획된 수업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노벨상 수상자이면서도 그 강의의 범위는 공기, 기압, 비중, 물체의 밀도 등등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퀴리 부인의 수업을 우리에게 현장 중계하고 있는 샤반이라는 학생의 노트는 겨우 열 살 안팎의 아이가 기록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것이다. 퀴리 부인의 육성을 텍스트로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 아니라 필요한 곳마다 적절한 삽화와 실험 과정을 그려 넣어 마치 내가 그 실험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게 한다. 참고서나 유인물에 의존한 채 매우 수동적이고 규격화된 공부를 하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샤반은 수업을 하는 퀴리 부인뿐만 아니라 그 또한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수업에 반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한 위대한 과학자의 강의를 손쉽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노트 덕분인데 역시 지적 여행과 훈련의 최종 완성자 역할은 학습자의 몫임을 알 수 있다.

당대 최고 절정의 학문 수준을 갖추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알고자 하는 눈높이에 맞춰 주도면밀하고도 열정에 찬 수업을 이끌어 갔던 퀴리 부인과 강의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업에 동참했던 샤반. 이 두 사람이 만나서 빚어내는 수업 풍경은 학교 현장의 안팎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크다. 이 책이 속성반, 영재반, 스피드반 하면서 마치 경쟁하듯 남들보다 먼저 진도를 나가고 뭐든지 속성으로 배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지적 자화상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병주 경기고양시 행신고 교사·좋은교사운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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