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2년 그레이스 켈리 사망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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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의 여성지 ‘우먼스 저널’이 독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성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1위는 그레이스 켈리(1929∼1982).

인기 절정의 배우에서 왕비로 신분이 바뀐 그녀의 이야기는 현대판 신데렐라 그 자체였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건축회사 사장이었고 큰아버지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극작가였다. 그녀는 1951년 영화계에 데뷔해 불과 5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가 게리 쿠퍼의 아름다운 신부 역으로 출연하는 서부영화 ‘하이 눈’은 지금도 올드 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서부영화의 고전이다.

1954년 그는 영화 촬영을 위해 모나코를 방문했다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모나코공국의 영주인 레이니에 3세 대공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대공은 당시 31세의 총각이었다.

이듬해 대공의 청혼을 받은 켈리는 1956년 ‘상류사회’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은막을 떠났다. 당시 그의 결혼은 전 세계적 뉴스가 됐으며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한편의 동화로 아로새겨졌다.

인구 3만 명에 우리나라의 웬만한 시보다 작은 규모로 관광과 카지노가 주 수입원이었던 모나코는 그 결혼으로 세계적인 관심 도시가 되면서 관광 수입이 급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연출된 비즈니스라는 주장이 이후 제기됐다.

대공이 당시 이 나라의 실권자였던 그리스의 선박 왕 오나시스의 권고를 받아들여 결혼작전을 벌였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오나시스는 인기절정의 기품 있는 미국 배우였던 켈리가 왕비가 되면 관광객 감소로 재정난을 겪고 있던 모나코가 국제적 관심을 끌 것으로 보고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연출해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켈리는 1남 2녀를 두었으나 1982년 9월 14일 둘째 딸 스테파니가 몰던 승용차가 벼랑으로 떨어지는 사고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53세 때였다. 그녀는 왕비가 된 뒤 공식 행사 외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게 왕실 생활을 유지했다. 그 철저한 절제와 자기관리는 바로 그녀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비결이기도 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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