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다룬 佛소설 ‘살아있어 미안하다’ 작가 e메일 인터뷰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프랑스 작가 프레데리크 베그베데(40·사진)는2000년 광고업계가 부추기는 물신주의를 비판하는 소설 ‘9990원’을 펴낸 뒤 다니던 광고회사로부터 해고됐지만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가 2003년 펴낸 베스트셀러 ‘살아 있어 미안하다’는 미국의 ‘독립 외국소설상’을 받았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뉴욕 세계무역센터 107층 레스토랑 ‘세계의 창’에서 식사하던 이혼남 카튜 요스톤과 두 아들의 이야기가 1분 단위로 펼쳐진다.

한 프랑스 작가가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의 레스토랑 ‘시엘 드 파리’에서 9·11테러의 문명사적 의미에 대해 톡톡 튀게 이야기하는 게 소설의 다른 한 축이다.

문학사상사가 9·11테러 4주년을 앞두고 7일 이 책을 펴냈다. 그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소설에서 어린 두 아이는 아버지 요스톤이 ‘슈퍼맨’이며 결국 모두를 살려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력하기만 하지요. 마치 테러 당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미국처럼 보입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두 아이는 정치나 인종, 종교에 대해 무지하지요. 무고하게 숨져간 시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지요. 테러리즘은 ‘슈퍼맨 미국’도 무력하게 만든 게 아니겠습니까.”

―요스톤은 아이들에게 “이건 실제가 아니고 대피시키는 훈련”이라고 위로합니다. 이 소설은 참극을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무시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도였는지요?

“지옥과 같은 비극과 과장된 묘사.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영화들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의 잔혹함도 마치 영화처럼 무덤덤해하곤 합니다. 저는 9·11 희생자들이 공포에 절규하며 죽어간 것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제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상황을 외부에 전달하려 애썼던 영웅이기도 하니까요.”

―소설의 이런 대목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뉴욕은 80개 언어가 사용되는 도시다. 테러의 희생자들은 62개 국적의 사람들이었다.’(190쪽) ‘옛날 이라크에 쌍둥이 바벨탑이 있었고, 하나는 혜성이 충돌해 깨지면서 화재를 일으켰다.’(250쪽) 왜 이렇게 쓰셨는지요?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를 끌어오고 싶었습니다. 80개 언어가 사용되는 도시 뉴욕, 62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던 세계무역센터는 현대의 ‘바벨탑’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던 그 바벨탑과 같은 야심이 9·11테러로 무너졌다고 보았습니다.”

―요스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신조는 미국인이 선택된 국민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유럽은 이집트, 대서양은 홍해, 미국은 이스라엘, 워싱턴은 예루살렘이다.’ 평범한 미국인들도 같은 생각일까요?(베그베데의 할머니는 미국인이다.)

“미국인들은 이스라엘과 유사한 선민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세계 평화를 미국만이 지킬 수 있다는 패권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프랑스의 반미주의가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반미주의에는 질시와 환멸 섞인 사랑이 어느 정도 개입해 있다.’ ‘빈 라덴 자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는 미국을 숭배하며 미국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한다.’ 프랑스인들의 반미주의에 정말 그런 요소가 있는 겁니까? 빈 라덴이 그 대목을 읽으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이라크전쟁 뒤에 프랑스가 반전 대표국이 됐지만, 여전히 텔레비전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미국 브랜드 옷에, 미국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한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겠지요. 이성적으로는 반미 반전을 말해도, 미국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거죠. 글쎄, 빈 라덴의 생각은…알라만이 아시겠지요.”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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