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남자 vs 여자… ‘다른 반쪽’을 위하여

  • 입력 2005년 6월 25일 0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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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뭔가 모를 긴장감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거운 바람처럼 훑고 지나갔다. 최근 이화여대에서 열렸던 한국여성철학회 심포지엄장. 모두 여자들뿐이었다, 논평자로 참석한 필자 한 사람만 빼고. 이런 자리는 난생 처음이었다.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하며 자연스러움을 가장했지만 온몸에 촘촘히 박힌 긴장의 파편들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정말 노력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몸짓 하나하나에서 내가 여자들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 애썼다. 비굴하다고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그건 생존본능에 따른 행위였다.

한편 지난주 성균관대에서 열렸던 ‘동양철학 학회 연합학술대회’는 거의 남자들만의 모임이었다. 참석한 수백 명의 학자 중 여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남자 발표자를 상대로 당당하게 논평을 했던 김미영(서울시립대·동양철학) 교수에게 물었다. “그 많은 남자 틈에서 긴장되지 않던가요?” 김 교수가 대답했다.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인가요? 이미 일상화된 일이에요.” 생각해 보니 내가 참여하는 모임 중 여자가 10%를 넘는 모임은 없다.

김세서리아(이화여대·동양철학) 연구교수는 “과거 유교사회에서 여자들은 유가의 이상적 인간형인 ‘성인(聖人)’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할 경우 도리어 ‘악녀’로 비난받아야 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지금도 당당하게 남자들과 경쟁하며 ‘인간’답게 살려는 여자들은 ‘독한 년’이라는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 들어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그런 심리가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 의식 속에 면면히 전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은 아직도 남성중심 사회에 집착하는 반면 여자들은 어떤 사회에서건 ‘현명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모진’ 훈련이 돼 있는 듯하다.

이 훈련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자들 스스로도 같은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열녀가 되어 남성중심 사회에 동참할 수 있도록 ‘착한 여자’ 재생산에 앞장서 왔다. 중국 여자들이 집필해 조선에도 전해진 ‘여사서’(女四書·이숙인 역주·여이연·2003년)는 이런 여자들의 가르침을 생생히 담은 교과서였다.

하지만 이번 주 서울에서는 아시아지역 최초로 세계여성학대회까지 개최됐으니, 한국 남자들도 이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반쪽의 시선을 배워 사고와 관점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행운’을 피할 수 없을 듯싶다. 이를 도와줄 책도 적잖이 나와 있다. ‘철학의 눈으로 읽는 여성’(철학과현실사·2001년)이 여성 자신과 철학을 여자의 시선으로 재검토하려는 시도라면 ‘모성의 담론과 현실’(나남출판·1999년)은 ‘모성’을 중심으로 여자의 정체성을 재평가한다.

남자와 다른 여자의 탁월한 시선은 무엇보다도 ‘모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나온다. 그것은 자기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타자(자식)를 탄생시키고, 나아가 타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를 통해 타자와 자신을 함께 완성시키는 삶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가진 본능이겠지만, 치열한 약육강식의 경쟁에 익숙한 남자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날 만큼’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자, 노력해 보자’.

김형찬 고려대 연구교수·한국철학 kphilo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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