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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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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5부와 하프로 잔잔하게 연주되는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예전부터 애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사랑받아왔다. 1968년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의 장례식에서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해 TV로 이를 지켜본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1971년 발표된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서도 이 선율이 예술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추모 음악으로 쓰이는데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말러 연구가인 길버트 카플란이 그 대표자다. 그는 말러와 절친했던 네덜란드의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의 말을 빌려 ‘아다지에토’가 부인 알마에 대한 말러의 ‘연애편지’라고 말한다. 알마는 말러가 보낸 이 작품의 악보를 받은 뒤 즉각 “내게 오세요”라는 회답을 보냈다는 것이다.
금융인이자 아마추어 지휘자인 말러광(狂) 카플란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꼭 필요한 무엇인가가 빠진 것처럼 보인다. 왜 ‘사랑’의 노래는 ‘애도’를 나타내는 데 쓰이면 안 된다는 말인가.
말러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는 에로스(사랑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가 특히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세기말적 시대정신을 음악에서 대표했던 말러에게 사랑-죽음의 친연성은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교향곡 5번을 작곡하기 직전 그는 갑작스러운 장기 출혈을 일으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사랑과 죽음의 두 얼굴을 예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 말러는 이를 음(音)의 시로 승화시켜 연인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기자는 지금 ‘아다지에토’의 원형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말러의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를 듣고 있다. 선율 진행이 ‘아다지에토’를 빼닮은 이 노래는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리라’라는 독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그러나 나는 홀로 나의 천국에 산다. 나의 사랑 속에, 나의 노래 속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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