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극무대 처음 선 양동근 걸쭉한 랩욕설로 인기몰이

  • 입력 2005년 4월 26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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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기자
변영욱 기자
요즘 서울 대학로에서 거의 유일하게 관객이 차는 연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객석을 향해 들입다 욕을 퍼붓고, 조롱하고, 물까지 뿌리며 제목처럼 관객을 모독하는, ‘극단76’의 ‘관객모독’이다.

공연 예매 사이트(인터파크)에서 연극 부문 1위인 이 연극의 평균 유료 객석점유율은 81%. 유료 관객이 절반을 넘기 어려운 대학로에서 모처럼 ‘터진’ 연극이다.

그 배경엔 배우 양동근(26)이 있다. 235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차기작으로 택한 첫 연극무대에서 그는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대학로 창조콘서트홀(02-764-3076)에서 한달 째 공연 중인 그를 만났다.

● 이젠, 랩으로 관객을 모독한다

“이 임신 중절자.들.아./이 거부만 일삼는 놈.들.아./매일매일에 허덕이며 매어 사는 놈.들.아./이 학문이나 한답시고 떠드는 놈.들.아./이 부패한 민중.들.아./이 교양 있다는 계급.들.아./이 말세를 사는 속물.들.아./이 씨xx 탱xxx들.아.(이하 심한 욕설이라 생략)”

극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10분. 현란한 조명 아래 그가 힙합리듬에 맞춰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며 자신이 직접 쓴 랩송으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은 콘서트에 온 양 즐겁게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었다.

1977년 초연 때 배우들이 퍼붓는 욕에 모욕감을 느낀 관객들이 항의하기도 했던 것에 비하면 세월의 차이마저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관객모독’ 공연 중 가장 ‘젊은 버전’이죠. 랩에는 항변적인 성격이 있어 기존 연극의 틀을 깨는 이 연극과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6월 19일 막을 내리는 이 연극에 양동근은 석 달간 전 회 출연한다. 연극은 처음인데 부담스럽지 않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엔 두려움도 있었죠. 처음 해보는 일인 만큼 그런 감정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공연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빨리 무대에 서고 싶어했던가를 깨달았죠.”

● 인생의 전문가를 꿈꾸다

그는 말투가 어눌하기로 유명하다. 4명의 배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사를 주고받아야 하는 이 연극에 그가 출연하게 되자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많은 대사를 막힘없이 소화해냈고,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흉내 내는 등 객석의 웃음도 자아낸다.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배우로 꼽혀왔던 것과 달리 그는 시종 성실하고 진지했다. 방송과 연극 연기의 차이를 묻자 “방송처럼 ‘매체’를 통한 연기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연극은 슬롯머신과 같다”라는 등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비유를 하기도 했다.

8세 때 아역 배우로 출발해 연기생활 18년째. 연극무대에서 그를 계속 볼 수 있을까. 그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일의 전문가보다는 인생의 전문가가 되기를 꿈꿉니다. 지금은 내 성격과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도기인데 이 시기에 연극을 함으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졌어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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