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造語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은 아니다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48분


과학기술부는 그제 ‘대덕연구개발특구’ 선포식을 갖고 대덕특구를 ‘혁신 클러스터(집적지)’로 집중 육성하고 이를 위해 특구 안에 ‘벤처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슨 말인지 물어보니 ‘혁신 클러스터’는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모아주자는 의미의 조어(造語)”라고 한다. ‘벤처 생태계’ 역시 조어인데, “벤처도 (생태계처럼) 창업에서 기술개발, 인력양성,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한 곳에서 순환하면서 지원받도록 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지식기반도시, 지식기반산업도시, 비즈쿨(비즈니스+스쿨), 사이언스 코리아, 유비쿼터스 도시 등 의미가 명료하지 않거나 서로 구별하기 쉽지 않은 조어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도 “요즘 공무원들은 ‘정책 디자이너’가 아니라 ‘언어 디자이너’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정책의 목적과 성격이 잘 드러나는 말을 찾다보면 조어가 필요할 때도 있다. 문제는 정부 최상층부를 의식해 억지로 조어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청와대 업무보고 철이면 부처마다 더 튀는 표현을 찾는 데 경쟁적이다. 김대중 정권 때도 대통령이 ‘신(新)지식인’ ‘지식경영’이란 말을 좋아하자 이런 표현이 들어간 정책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현 정부에서는 더 심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혁신’이란 말을 자주 쓰자 공공기관이 옮겨갈 도시까지도 모두 ‘혁신도시’가 됐다.

이런 ‘과시성 조어’는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 ‘기업도시’만 하더라도 기업들이 활동하기 좋아서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기업도시’가 되는 게 정상이다. ‘기업도시’가 될 만한 인프라도 없는데 이름부터 정해놓고 꿰맞추려 한다면 그 비용이 얼마이겠는가. 그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이 공무원들의 ‘조어 경쟁’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면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조어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은 아니다. 본질과 내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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