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코러스’…‘음지’서 캐낸 천상의 화음

  • 입력 2005년 2월 24일 15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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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젊은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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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첫날이었다. 뭘 했는지? 교장도, 애들도 모든 게 개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9년 1월의 프랑스.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한 끝에 마르세유 인근 기숙학교 폰드레탕에 자리를 얻은 음악선생 클레망 마티유(제라르 쥐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이들을 체벌과 독방감금으로 다스리는 폭군 같은 교장, 교사들을 괴롭힐 궁리만 하는 작은 악마 같은 아이들이었다.

200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최우수주제가상 후보인 프랑스 영화 ‘코러스’는 이 지옥 같은 학교에 노래가 울려 퍼지기까지 마티유 선생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간 봄과 여름의 이야기다.

낡고 추레한 입성에 키 작고 뚱뚱한데다 대머리인 마티유 선생은 아이들에게 이름 대신 ‘빛나리’로 불리며 조롱당하지만, 그 자신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르케렉, 네가 수위 영감이 다치도록 장난 친 범인이지? 비밀에 부칠 테니 영감을 치료해주렴.” “모항주, 네가 아이들 자습을 좀 맡아줘.”

폰드레탕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나 생활고 때문에 부모가 기를 수 없어 맡겨진 아이들의 고아원.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는 부모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치고, 교사들의 체벌에서 교훈보다는 힘의 논리를 터득하며 세상에 대해 일찍 마음을 닫고 거칠어간다.

자신이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작곡 악보를 아이들이 훔쳐가도, ‘눈에는 눈, 작용에는 반작용’이라며 일벌백계로 다스리라는 교장의 얘기를 따르지 않던 마티유 선생은 어느 날 자신을 놀림감으로 삼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서툴지만 애들이 노래를 불렀다. 괜찮은 목소리도 있었는데, 애들에게 뭔가 해줄 순 없을까?’

스스로에 대해 ‘실패한 음악가’라고 자조하던 마티유는 마침내 아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첫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각자의 개성을 알아보겠다”며 ‘장래희망’을 써내게 했던 마티유 선생은 이제 아이들 하나하나의 노래를 듣는다.

“너는 소프라노, 너는 알토, 너는 베이스….”

노래 부를 줄 모르는 꼬마 페피노는 메트로놈을 작동시키는 조수, 가망 없는 음치 코르방은 악보스탠드…. 이제 모든 아이들은 ‘코러스’에서 각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몫을 갖게 됐다. 마티유 선생은 전쟁 통에 홀로 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반항아가 된 미소년 모항주에게서 천상의 목소리를 발견한다. 선생의 면전에 담배연기를 내뿜고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몽당이 벌을 받기 위해 독방으로 끌려갈 때도 마티유 선생은 “바리톤이 필요해. 그 애의 바리톤 목소리가 필요하다고”라고 외친다.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프라노도 알토도 바리톤도 필요하듯이, 마티유 선생에겐 제아무리 문제아라도 저버리거나 미워할 아이가 없었던 것.

‘4월, 애들이 내게 힘을 준다. 그 덕에 난 이렇게 밤새워 작곡까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학교에는 과거에 찾아볼 수 없던 웃음과 생기가 피어나지만, 교장은 ‘문제만 만든다’며 돌연 합창단 해체를 지시한다. 지하로 숨어든 아이들의 합창단은 기숙학교의 후원자인 백작부인에게 그 존재가 알려지는데….

영화 삽입곡 중 두 곡을 직접 작곡한 감독 크리스토퍼 바라티에는 파리음악학교를 졸업한 클래식 기타연주자 출신이다.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한 스크린 속 소년들은 이 영화의 음악을 작곡한 브루노 콜라가 소년합창단에서 발탁했다. 천사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년 모항주조차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합창단원 출신. 마티유 선생이 발견해 준 재능 덕분에 저명한 클래식 음악가가 되는 성인 모항주는 ‘시네마 천국’에서 어른 토토를 연기했던 자크 페렝이 맡았다. 전쟁터에서 죽은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며 늘 교문 앞에서 서성이는 꼬마 페피노는 페렝의 친아들. ‘빛나리’ 마티유 선생 역의 쥐노는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프랑스에서는 제라르 드파르디유 만큼이나 사랑받는 국민배우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빚어낸 ‘코러스’의 OST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영화가 개봉된 뒤 3개월 넘게 음반판매 1위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총 130만 장 이상 팔렸다. 3월 3일 개봉. 전체 연령 관람 가.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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