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청장 답신에 대한 김형오의 답신 "유청장께"

  • 입력 2005년 1월 31일 15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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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장께

답신 잘 받았습니다. 유청장 편지 말미에 “내가 어떤 길을 가든 끝까지 애정 어린 시각으로 보아 주십시오” 라는 말이 내 가슴을 찌릅니다. 과연 내가 ‘양심 있는 文士’인 유청장의 ‘본심을 잘 아는’ 친구로서의 할 일을 다 하고 있는가 반문하면 떨리기조차 합니다.

먼저 나로 인해 유청장이 곤경에 빠지게 된 것 같아 참으로 민망한 마음입니다. 문제가 된 ‘현충사’ 관련 내용은 유청장이 나에게 예를 든 것인데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청장이 공사다망한 중에 빨리 답신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고 광화문 현판의 교체를 강조하기 위해 ‘다소 과한 비유’를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아산 ‘현충사’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순신 장군을 무척 존경합니다. 남해안 바닷가 출신인 나는 우리고향사람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순신은 400년 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권력이 개입할수록 이순신에 대한 존경심은 ‘구리 이순신’으로 희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에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겠지요.

이 글을 보는 분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산 현충사 발언은 유청장이 “어용적 청장이 아니 되겠다”는 강한 신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논의의 본질적인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유청장이 사과성명까지 낸 마당에 더 이상 핵심에서 벗어난 인신공격은 그만두기를 희망합니다.

이제 「광화문」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청장 답신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나의 의문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유청장은 답신에서 광복60주년에 맞춰 광화문 현판교체를 하기로 되어 있었고 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행사를 근정전 앞에서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광복절 환갑행사를 어디서 하느냐는 것까지 시비 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청장, 한글 광화문 현판을 떼고 안떼고 하는 문제는 광복절 행사를 근정전 앞에서 하는 것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닌 듯 합니다. ‘한글 광화문’이 있다고 그곳에서 행사를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제1신에서도 지적했듯이 ‘광화문’ 복원사업이 시작도 안된 상태에서 ‘박정희 한글 광화문’ 현판이 교체된다면 그야말로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청장의 속내와 전혀 무관하더라도 말입니다. 이점을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청장, 잘 아는 대로 박정희 유산을 지우겠다는 유형무형의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나는 이미 밝혔듯이 역사를 권력의 힘으로 재단(裁斷)하려는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합니다. 오늘의 잣대로서 어제를 꿰맞추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영욕(榮辱)이 있기 마련인 역사, 그것이 바로 미래를 비쳐주는 거울입니다. 역사는 결코 순일(純一)한 체계도 아니고 강자의 전유물일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말이 안되는 일일지라도 담담하게 안아야 하고 깊게 패인 상처조차 보듬고 가는 것이 진정한 역사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친구가 정치적 회오리에 말려드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내가 인천공항에 내리니 보좌관이 몇 건 자료를 주면서 유청장이 말한 2003년 공청회 등을 거친 사항이라는 것은 광화문 권역 복원에 관련한 것이지 현판교체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이 어떻든 광화문 현판에 대한 본격적인 공론화는 지금부터인 것 같습니다. 신문이나 인터넷에서도 유익한 글들이 많은 듯하니 참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두 번째 문제인 正祖 글씨 관련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고심과 애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유청장은 고궁의 격에 맞추려면 한석봉과 김정희, 그리고 正祖 세분 글씨 중에서 어느 한분의 글씨를 집자해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청장, “집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불변인가요. ① 광화문과 관계없는 분들의 글씨를 ② 집자해서 현판을 달아야 「고궁의 격에 맞는 것」일까요.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관의 문제이고 문화재 보호정책의 기본정신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다시한번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가 35년간 걸려 있는 데에 대해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이 나라 지성인들이 시대적 소명과 역사의식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광화문은 ‘대표적인 중심대로의 현판’내지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보는 나의 견해에 대해 유청장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유청장이 “광화문은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이며 경복궁의 정문”이라는 주장에 어떤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광화문을 경복궁의 일부라는 인식에 앞서 서울 중심대로의 상징적 건물로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현판 바꾸는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경복궁 안에 있는 어떤 현판을 철거, 교체한들 여론이 이렇게 뜨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광화문’을 보는 시각은 이미 수십년동안에 ‘시민화’되어 왔고 따라서 갑작스런 현판철거를 정치적 의혹으로 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점은 문화재를 사랑하고 문화재적 관점에 서있는 유청장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유청장 말대로 현재 진행되는 일이 경복궁?복원하는 것이지 광화문 건물 자체를 복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글씨체로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고 부단한 고민을 해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아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살려 단안을 내린다면 그것이 역사와 미래가 손잡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후손에게 파괴의 역사가 아닌 성취의 역사를 만들어야 할 소명이 있지 않을까요.

지조와 양심 있는 선비 내 친구 유홍준이 문화재 청장으로 길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해와 불신이 많은 공직사회에서 선비정신으로 꿋꿋이 헤쳐 나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 볼 것입니다.

건승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2005. 1. 31

국회에서 김 형 오

*p.s.

① 중앙청 허는 것을 반대했을 때 일화 한 토막 : 어느 날 강영훈 전 총리께 이런 말씀드렸더니 “나도 자네처럼 반대했는데 중앙청이 사라진 후의 경복궁 모습을 보여주는데 (중앙청 철거도) 일리가 있더군” 하셨습니다. 광복 60주년 행사를 사라진 중앙청 자리에서 한다니 참석해야겠습니다.

② 유청장이 35년 전 영도 우리 집에 왔을 때의 어머니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26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아버님도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기 오래 전 일입니다. 평생 부모님께 효도한번 못했는데, 어머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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