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그때 그시절엔]<24>소설가 심상대와 70년대 아버지들

  • 입력 2005년 1월 30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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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아버지들의 시대’였다.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등에 지고 억척같이 항구에서, 탄광에서 신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아버지들 덕택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자식들을 위해 비굴할 줄 알았던 ‘사나이들의 시대’가 그립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0년대는 ‘아버지들의 시대’였다.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등에 지고 억척같이 항구에서, 탄광에서 신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아버지들 덕택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자식들을 위해 비굴할 줄 알았던 ‘사나이들의 시대’가 그립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뭐니 뭐니 해도 1970년대는 ‘아버지들의 시대’였다. 한두 사람의 위정자가 서둘러 이끈다 해서 누천년의 농경사회가 한 순간 고도산업사회로 변모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격변의 시대 밑바닥에는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등에 지고서도 억척같이 신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오징어 풍어로 흥청거리던 항구 포구와, 노다지를 캐내는 석탄광산이 인근에 있던 소년 시절 나의 고향에는 그러한 아버지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떼처럼 몰려들어 아우성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그들은 벌써 하루치 절반에 해당하는 새벽일을 마치고 단칸 월세방으로 돌아와 좁은 마루 귀퉁이에 올라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의 이마를 만지면 그곳에는 비린내가 묻었고, 아버지가 얼굴을 씻은 세숫대야의 물은 석탄물로 검게 변했다. 우리는 그런 냄새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가 번 돈으로 교과서와 연필을 사서 책가방에 넣고 학교로 갔다.

아아, 그때 좀더 영리했더라면 비린내 나는 아버지의 손길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을. 차라리 좀더 어리석기라도 했더라면 석탄으로 칠갑한 아버지의 품에 뛰어들어 칭얼대기라도 했을 것을. 그때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면서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겠노라는 시건방진 꿈을 꾸었다. 여름날에도 넥타이를 매고, 포마드를 바르고 양복을 입고, 일요일마다 피크닉을 가는, 만화책 속의 그런 세상을 살아가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만한 나이가 된 이제야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들이야말로 막노동꾼이었기에 위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탄 들여놓을 걱정으로 한숨쉬는 어머니 앞에서 담배만 뻑뻑 태우던 아버지. 그리하여 호통과 함께 일어나 돈 벌어 오겠다며 대문을 박차고 나서던 아버지. 그때 어머니가 건네주던 아버지의 유일한 행장은 낡은 비닐백 하나였다. 그리고 그 비닐백의 내용물이란 낡은 내의 한두 벌, 구멍 난 양말 몇 켤레가 전부였다.

이곳저곳을 헤매던 아버지는 기제사가 있기 하루 전날 밤, 그 다 낡아빠진 비닐 백을 들고 간신히 대문으로 들어섰다. 돈을 벌기는커녕 걸인 꼴을 하고 돌아왔건만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반겼고, 한편으로 비웃으면서도 우리는 마음 속 깊이 기뻐했다.

그 시절이 그립다. 가난하고 못 배웠으나 자식들을 위해 비굴할 줄 알았던 ‘사나이들의 시대’가 그립다.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사나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아버지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최우선의 가르침이야말로 ‘아버지의 책무’와 ‘사나이의 자존심’이었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 심상대 씨는…

1960년 강원 명주군 출생으로 1990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묘사총(猫蛇塚)’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묵호를 아는가’,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섯 편의 소설’, ‘늑대와의 인터뷰’를 묶어 냈고, 연작소설 ‘떨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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