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십 네 번째 펴낸 책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내놓을까 싶다”면서 “이 책에다 음악 무용에 관한 온갖 사진과 그림들을 실었으니 심혈을 다 기울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여섯 번 개인전을 열었지만 모두 피아니스트와 발레리나를 그린 것이었다”며 “특히 무용 관람을 업으로 삼아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 가열 123번 자리는 내 지정석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번 책은 사실상 어떤 틀이나 얼개가 없어서 단풍잎들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우연하게 아름다워진 골짜기를 연상케 한다. 예술에 관한 수천 개의 단상들은 그가 수십 년간 접한 소리와 몸놀림들이 결국 그의 시와 그림이 됐음을 알게 한다. 클로드 드뷔시의 ‘물그림자’를 듣고 나서는 ‘신경의 바늘 끝에서/천개의 화살이 쏟아진다/그 우아한 불보라’라고 썼다. 스타니슬라브 부닌의 ‘야상곡’ 연주를 듣고는 이렇게 썼다. ‘젖빛 안개/집게손가락으로 건져내는 물방울/몽정으로 젖은 추운 나뭇잎새들/네 가느다란 팔의/경사의 입맞춤, 늑골 사이/오디 빛 유두’.
서양 무용사와 음악사를 꿰뚫는 그의 박학함은 이같이 책 곳곳에서 보인다.
그는 그간 문지시선 등의 시집들에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900장 가까이 된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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