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그 남자네 집’ 외

  • 입력 2004년 12월 17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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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박완서 지음 현대문학사

올해 일흔 네 살, 한국 현대소설사의 연륜을 그대로 담고 있는 원로 소설가 박완서 씨의 열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4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최고(最古) 전통의 계간지 ‘현대문학’의 창간 50주년 기념 작품으로 이 소설을 펴냈다.

이 소설은 10월 발간 이후 계속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6·25 전쟁 이후 1950년대 우리 사회의 피폐한 모습을 배경으로 펼쳐낸 첫사랑의 이야기가 현실에 찌든 독자들에게 서정적인 위로를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소설가 박완서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기지 넘치는 문장이 소설 곳곳에 있다는 점도 꼽힌다. 반세기 전의 한국 풍경이, 사람들의 내면이 저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요인으로 보인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덩샤오핑 평전/벤저민 양 지음 권기대 옮김 황금가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덩샤오핑의 생애에 덧입혀진 ‘신화’를 최대한 벗겨내고 객관적으로 그의 삶에 다가가려 한 평전. 실용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갈구 때문인지 발간 15일 만에 2만8000부가 판매되며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기간에 덩은 탁월한 군사 전략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그가 부대에 대한 정치 통제 기능만 맡았음을 밝혀낸다. 사람의 의중을 읽는 그의 직감은 상관인 마오쩌둥을 흡족하게 만드는 보고의 기술로, 자아비판을 할 때도 핵심을 비켜가는 운신의 기술로 빛을 발했다고 설명한다.

덩은 경쟁자를 견제하는 마오쩌둥의 의도를 간파해 한 발짝씩 늦게 그의 행보를 따라갔고, 권력층 내 진공상태 속으로 한 단계씩 솟아올랐다는 분석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희망의 원리(전 5권)/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루카치와 함께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독일어권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의 사상체계를 집대성한 책이다. 번역자가 10여 년에 걸쳐 200자 원고지 1만3000장에 이르는 책을 완역해 화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저자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 ‘희망을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개념과 사고를 배열한 책이 아니라 문학 건축 음악 미술 종교 역사 철학분야에서 찾아 낸 ‘희망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어렵고 비싼 책인데도 반응이 좋았다. 권향미 열린책들 주간은 “발간 두 달 만에 917질(4585부)이 나갔다”며 “힘든 시대를 이겨 나가려면 희망을 배워야 한다는 저자의 논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고 전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이영훈 펴냄 서울대학교출판부

이 책은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가 쉽지 않다. 1650∼1910년 조선 후기의 인구, 임금, 지대, 물가, 이자율, 경제성장률 등의 통계를 추출하고 이를 분석한 연구논문 9편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서평위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그만큼 학계에 끼친 영향이 컸다는 증거이다.

조선후기 경제가 18세기까지만 해도 완만한 상승곡선을 긋다가 19세기에는 근대화를 감당해낼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은 이런 내용 자체보다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희귀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재가공해 낸 학문적 열정과 엄밀성에 경의를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종시대의 근대화 역량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에서 자생적 역량을 옹호하는 측도 이 책의 자료를 원용할 정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스티븐 컨 지음 휴머니스트

1880년부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유럽은 전화 무선 X선 영화 자동차 비행기 등 과학기술의 혁신과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정신분석, 입체파, 상대성이론 등 지성사의 불꽃놀이가 펼쳐진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로 기억된다.

근대 문화사와 지성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 시대에 근대적 시공간 개념이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해 시간과 공간이라는 철학적 범주를 역사에 대입시켰다. 이런 변화 속에 제임스 조이스, 피카소, 후설, 아인슈타인 등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 과학자를 병치시켰다.

776쪽에 이르는 분량과 2만7000원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출간 한 달 만에 초판 2000부가 모두 팔렸다. 휴머니스트의 선완규 인문분야 편집장은 “한 권의 책에서 박학다식의 지적충족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천연염색/이종남 지음 니콜라스 윤 사진 현암사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천연염색에 대한 지침서다. 자연으로부터 색깔을 얻어내 섬유는 물론 한지와 나무까지 염색하는 방법들을 설명했다. ‘천연염색연구원’이라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은이가 6년간 옛 책들과 산천을 누비며 ‘족필(足筆)’로 쓴 것이어서 실용서들 사이에서 단연 빛나는 미덕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산가요록(山家要錄)’ 등 옛 책을 뒤져 기존 논문들의 잘못을 바로잡았으며, 산골 노인들의 기억 속에서 전통 염색법들을 어렵사리 살려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많은 공을 들였다. 생생한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꽃 등 재료들을 계절마다 몇 년에 걸쳐 찍고, 제 색깔이 나오도록 인쇄할 판을 몇 번씩 바꿨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김정규 교수는 “우리 전통 색소를 친환경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에 힘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뜻 깊은 책”이라고 평가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Made in USA/기 소르망 지음 민유기·조윤경 옮김 문학세계사

프랑스의 저명한 문명비평가인 저자가 ‘개인주의’라는 코드를 통해 미국 사회를 들여다본 책. 본문에서 한국을 ‘반미(적) 국가’로 단정한 점이 책 발매 당시 논란거리가 됐다.

저자는 미국에서는 개인이 ‘신’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어느 것도 개인을 방해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는 것.

왜 미국에서는 사회주의가 실패했을까. 사회주의는 권력자나 우월한 존재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는 유럽 사회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개인이 자신을 책임지는 미국적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조차도 미국에서는 개인의 문제다. 신의 사랑보다 ‘내가 신을 사랑한다’는 희열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9월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동시 발매됐으며 저자는 이 책의 발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세계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비즈니스 생태학/폴 호켄 지음 정준형 옮김 에코리브르

“오늘날 환경파괴의 주범은 개인도, 가정도 아닌 ‘기업’이다.”

저자는 환경파괴 비용이 시장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대의 경제시스템이 왜곡돼 있다고 말한다.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기업이 환경을 존중할수록 이득이 되는’ 제도와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기업들이 ‘오염물질 배출권’을 거래 또는 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은 사용을 마친 뒤 제조사가 전량 회수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용 창출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도 득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바닥재 생산업체인 인터페이스사 CEO 레이 앤더슨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환경경영을 이룬 경험을 쓴 책 ‘전 세계 환경경영의 첫 번째 이름, 인터페이스’(에코리브르)가 출간되기도 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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