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눈이 맑은 지훈아! 네 웃음속에 산타가 있구나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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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심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해맑게 웃는 지훈이(위). 에버랜드내 콘도에서 지훈이, 여자후배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 파티를 벌였다(아래).
혜심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해맑게 웃는 지훈이(위). 에버랜드내 콘도에서 지훈이, 여자후배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 파티를 벌였다(아래).
유리창 안쪽은 동화의 나라.

호두까기 인형이 칼을 휘두르고, 꽃의 요정이 춤을 추는 곳. 솜사탕처럼 하얀 눈길 위를 신나게 달리는 루돌프. 얼음나라 공주님과 마법의 세계.

따스한 모닥불 옆에서 구유 속 한 아이를 정겹게 바라보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어린이들 앞에 펼쳐지는 나라다. ‘부모님’이란 지극히 당연한 ‘산타 할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은 그 안에서 포근한 꿈을 꾸곤 한다.

함께하고 싶어 손을 뻗어 본다.

유리창의 차가운 느낌. ‘산타 할아버지’가 없는 ‘녀석’은 유리창 너머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선뜻 들어서기는 쉽지 않다. 단 며칠이라도 녀석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녀석과 2주일 동안 함께한 ‘크리스마스 만들기’.

○ 혜심원

크리스마스 선물, 놀이동산, 떡볶이 파티….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했지만 무엇보다도 같이 있었다는 것이 즐거웠다. 위부터 에버랜드 퍼레이드카, 후배 기쁨조들이 참가한 파티,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모형 기차관.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지훈이.

누구나 어렸을 적 한번쯤 꿈꿔 보는 크리스마스 선물. 보통 아이들이라면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졸라는 보게 마련이다. 그럴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멋진 크리스마스를 선사하고 싶었다.

지훈(가명)이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사회복지법인 혜심원(02-755-8459)에 산다. 여섯 살 난 사내아이로 2월에 이곳으로 왔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맡아 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혜심원에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31명이 살고 있고 그중 지훈이가 가장 어리다. 모두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보살펴 줄 형편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혜심원 원장님 소개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지훈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너무 갑작스레 친한 척하기도, 그렇다고 무뚝뚝하게 있기도 힘들었다.

“이름이 뭐니?”

“지훈이요.”

“학교 다니니?”

“아니요. 내년에 가요.”

눈이 아주 크고 속눈썹이 긴 녀석은 이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얼른 눈길을 피하곤 했다. 어떻게 하면 녀석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처음에는 녀석과 하루 이틀 정도 지내며 선물을 사다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놀이동산 같은 데 데리고 가서 신나게 놀다 오면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녀석은 쉽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

처음 본 아이들이 “누구세요”라고 묻는데 한 아이가 불쑥 “지훈이 후원자”라고 말한다. 한 여자아이가 그 말을 듣자마자 “좋겠다. 난 없는데…”라며 부러워한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며 당황스럽다. 지훈이도 멋쩍은 듯 몸을 홱 돌렸다.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후원자가 있긴 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오는 사람은 드물고 한두 번씩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란다. 나도 그런 후원자로 비칠까.

우선 지훈이와 친해지기 위해 2주일 동안 찾아가 함께 놀았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축구, 농구 하고 사탕 먹고 재잘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 내 안에 너 있다

녀석은 처음 얼마 동안은 말문을 거의 열지 않았다. 호칭도 ‘선생님’.

몇 번을 만난 후 “선생님이 뭐야. 형이라고 불러야지. 아니면 음…키다리 아저씨 어때?”라고 묻자 위아래를 훑어보던 녀석은 대뜸 “짧은데?”라고 응수한다.

가슴이 딱 막히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도 말문이 틘 게 어딘가.

서로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열려가고 있었다.

녀석은 남산공원에 가자고 졸랐다. 그곳에서 숨바꼭질, 자치기를 하며 뛰어놀았다. 지훈이보다도 내가 동심의 세계를 되찾은 듯했다. 녀석이 양말을 신고 오지 않아 발이 빨개진 것만 빼면 우리는 부러울 게 없었다.

“지훈이 하고 싶은 게 뭐니. 형이 다 들어줄게.”

녀석은 몸을 비비꼬기만 했다.

한참을 지나서야 가느다란 목소리로 “에버랜드”, “떡볶이”라고 간신히 말한다.

원하는 것이 없다기보다는 그런 것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 형이 에버랜드에 데려가 주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도 만들어주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

직접 말을 안했지만 무척 신나는 모양이다. 벌써 주변 형들에게 자랑을 한 것을 보니….

날이 갈수록 헤어질 때 떨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녀석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원장님 말씀이 “애들이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몇 번을 봐도 녀석은 배웅을 해주지 않았다. 방안에서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할 뿐. 더러는 형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돌아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켜고 무심코 현관을 쳐다본 순간 작은 머리 하나가 밖으로 삐죽 나왔다가 안으로 쏙 들어갔다.

○ 달려라 회전목마

에버랜드로 출발하는 날. 둘만 가면 썰렁할 것 같아 여자 1명을 포함해 후배 3명을 데려갔다.

지훈이가 어린이 산타복을 입고 퍼레이드카에 올랐다. 다른 어린이 20여명과 함께 탔지만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 연도에 늘어선 엄마 아빠들이 자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소리 지르며 사진을 찍어댄다.

우리도 이에 질세라 더 큰 소리로 “우리 지훈이, 제일 멋지다”고 외치면서 기를 살려줬다. 녀석은 그제서야 의기양양하게 옆에 있는 아이 손을 잡는다.

기차, 회전목마, 어린이 바이킹, 조랑말 타기…. 녀석은 평소에 회전목마를 무척 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후 자기가 먼저 뛰어다니며 이거 타자, 저거 타자라고 말을 한다. 밤 불꽃놀이까지, 무려 8시간이나 놀이동산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훈이가 더 신이 났던 것은 놀이기구가 아니었다.

나와 후배의 손을 잡고 막 뛰다가 그 손에 매달려 ‘붕’ 떠오르는 것. 한두 번 재미삼아 해줬는데 녀석은 계속 손에 힘을 꼭 주고는 신호를 보낸다. 또 해달라는 말은 못하고….

오후 내내 계속된 ‘붕’ 태우기.

‘지훈아∼ 이거 계속하면 형 죽어∼.’

다음날은 놀이동산 콘도에서 떡볶이와 케이크 파티.

떡볶이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동네 떡볶이 아저씨에게 찾아갔더니 “네가 만들면 맛있겠느냐. 프로가 만들어야지”하시며 직접 와서 만들어주셨다.

케이크는 녀석과 함께 직접 만들기로 하고 기본 케이크 빵과 장식물을 준비했다.

우리는 크림을 짜서 데커레이션을 만들고, 초콜릿 인형을 붙이며 케이크를 장식했다. 불붙은 마술 초에서 캐럴이 나오자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기해 한다.

“하하하, 신난다”를 연방 해대느라 정신이 없다. 색색의 초콜릿 조각을 얹고 장식집 위에 산타 인형을 붙였다. 녀석은 자기가 직접 만든 케이크가 자랑스러운지 자기이름 외에 함께 지내는 형 이름도 쓰겠다고 성화다.

삐뚤삐뚤 어설프게 쓴 이름.

사실 먹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아가기 전 녀석이 한참 케이크를 찾는다.

“케이크 가져가려고?”

“네, 내일이 대영이형 생일이에요.”

대영이는 혜심원에서 함께 살고 있는 네살 위 형이다.

후배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립식 로봇 장난감, 퍼즐 등 선물을 마련해 왔다. 나의 선물은 책가방.

녀석은 “야! 책가방이다”하며 한 번 메어보더니 휙 집어던지고는 바로 장난감에 빠졌다.

“지훈아, 학교가면 신날 것 같지?”

“아니요.”

“학교가면 친구도 많고 같이 놀 수도 있잖아.”

“…….”

후배들과 함께 산타 복, 호랑이 인형 복을 입고 파티를 진행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지훈이는 산타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 너의 두 손

돌아오는 길에 밀레니엄 서울 힐튼에서 뷔페로 저녁을 먹었다. 호텔 쪽에서도 뭔가 돕고 싶다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떠들고 뛰어다니느라 오는 내내 잠들어있던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제집처럼 다시 뛰어다닌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기념 촬영.

녀석의 어깨 위에 올린 내 손 위로 작은 손이 포개졌다. 처음으로 지훈이가 먼저 내민 손이었다. 따뜻했다.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 올라온다.

‘자식, 좋으면서 왜 그동안 말을 안했어….’

밥을 먹는데 옆에 앉은 지훈이는 볶음밥과 탕수육만 골라 온다. 더 맛있고 비싼 음식도 많은데….

“지훈이 갈비 먹여줄까.”

“아니요.”

함께 간 여자 후배가 끼어들었다.

“누나가 먹여줄까.”

“네.”

녀석은 나보다 여자 후배를 더 좋아했다.

지훈이를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 대뜸 “언제 또 올 거냐”는 녀석의 물음에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남은 후배들과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바에야 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마는 것은 아닐까.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후배 명국이가 한마디 던진다.

“형,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만 많은 거지. 그것도 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함께 지낸 시간 동안 지훈이가 정말 즐거워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녀석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지훈이 보다도 내게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진 걸 보면.

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주길…▼

To 지훈

아직 한글도 어설픈 네가 신문을 읽을 리는 없겠지. 하지만 먼 훗날 혹시라도 이 기사를 보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몰라 몇 자 적는단다.

눈이 맑고 유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던 지훈이. 형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걱정이 우선 앞섰단다.

실제로 얼마나 자주 찾아갈 수 있을지, 괜히 시작했다가 끝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지. 물론 지금 마음 같아서는 오래도록 너를 지켜 주리라 다짐하고 있지만….

원장 선생님께도, 다른 사회복지단체에도 찾아가 많이 여쭤봤단다. 결론은 그래도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면서 주저앉는 것보다는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지.

이제는 ‘헤어짐’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러면 서로 더 부담스러워질지도 모르니까. 그저 누군가 곁에 있다는 든든한 마음으로 즐겁게 만나면 되는 것이겠지.

지훈이나 형이나 모두 때로는 혼자, 때로는 여럿이 어울리며 사는 것 아니겠니. 누군가는 잠시가 될 수 있고, 누군가는 그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 수도 있겠지만.

너와 함께 보낸 2주일 동안 참 많은 분들이 신경 쓰고 도와주셨단다.

케이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신 밀레니엄 서울 힐튼의 김한식 주방장님과 감상현 조리사님, 너를 알게 해 준 같은 호텔 곽용덕 대리, 콘도와 인형옷을 빌려준 에버랜드 김인철 대리, 네가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말에 친척 결혼식 참석도 취소하시고 직접 와서 만들어주신 안명권 떡볶이집 아저씨, 그리고 너와 이틀 동안 함께한 후배 계명국, 한성재, 송지은.

지훈아.

네가 많이 크고 나면 아마 우리 중에 누구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을 못하겠지.

하지만 먼 훗날, 네가 여자친구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을 때 어렴풋이라도 어떤 사람들이 네 옆에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조금씩만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 있다면, 조금만 더 많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되겠지.

지훈아.

자꾸만 추워지고 있다. 귀찮아도 밖에 나갈 때 꼭 양말은 신고 나가렴. 뚱뚱한 아저씨랑, 호랑이 탈 쓴 아저씨랑, 예쁜 누나랑 같이 또 놀러갈게.

▼사랑의 후원자 이렇게 되세요▼

누구라도 아동복지시설 어린이나 소년소녀 가장의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다.

결연 후원은 1 대 1로 맺어져 경제적으로 돕거나 정기적으로 찾아가 함께하는 것. 결연 후원을 하기 위해서는 보육원, 장애인 시설 같은 곳을 직접 찾아가거나 사회복지단체를 통해 결연하는 방법이 있다.

결연 후원은 후원자와 대상자간에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우선 후원자 중심이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지 등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 것은 좋지만 어린이의 편지가 내용이 짧거나 비슷한 내용이 반복돼도 실망하면 안 된다. 감사의 마음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흥미로운 편지를 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경제적 후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매달 1만 원 이상이면 액수에 관계없이 후원이 가능하며 후원자의 사정에 따라 금액과 기간을 조절할 수 있다.

기금 후원과 유산기증은 자신이 원하는 특정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것. 액수와 기간은 제한이 없고 후원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이나 복지 전반을 위해 사용된다.

평생 후원은 기금을 단체에 기탁해 그 이자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법. 단체마다 금액 차이는 있지만 한국복지재단은 300만 원 이상을 평생 후원 기금으로 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방법들로 후원에 참여할 수 있다.

회사의 경우 생산하는 물품을 기탁하거나 판매 수익금의 일정부분을 적립해 돕거나 기술이나 행사를 통해 도울 수도 있다. 또 각 단체나 회사에서는 발행하는 사보나 회보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 대한 소식을 전함으로써 독자가 후원에 참여하게 독려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복지재단 홍보개발본부 김진 대리는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사람은 가장 큰 힘을 느끼게 된다”며 “작은 관심과 참여가 더욱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후원연결을 해주는 사회복지단체
단체전화번호
한국복지재단02-777-9121
굿네이버스02-338-0448
구세군02-720-9494
한국어린이보호재단02-336-5242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02-723-5101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02-544-9544
한국월드비전02-784-2004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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