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 입적]해외포교 한평생… 세계 4대 生佛 꼽혀

  • 입력 2004년 11월 30일 23시 24분


30일 입적한 숭산(崇山) 스님은 한국 불교의 해외 포교를 위해 자신의 생애 절반을 바쳤던 인물이다.

1970, 80년대 미국에서 포교할 때는 주말마다 각 도시를 돌며 법문을 했고 1년에 지구를 세 바퀴 돌 정도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 도올 김용옥은 이런 그를 보고 “인간세의 원(願)을 행(行)하고 다니는 장정(長征)이란 신라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 기행보다 더 방대한 것이요, 마오쩌둥(毛澤東)의 장정보다 더 처절한 측면이 있다”고 표현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미국인 현각(玄覺) 스님이나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한국식 절 태고사를 10년째 짓고 있는 미국인 무량(無量) 스님 등 50여명의 외국 지식인들을 출가시켰고, 1000여명의 외국 불제자(佛弟子)들을 길러냈다.

그는 또 뛰어난 선승(禪僧)이었다. 199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종교학과 교수팀이 세계의 불교 전통에 관해 출간한 ‘부처와 비전’이라는 책은 티베트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 베트남 승려 틱 낫 한, 캄보디아의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그를 4대 생불(生佛)로 꼽았다.

그는 또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실천한 스님이기도 했다.

1972년 한국 불교를 알리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 시에 머물 때 그는 낮에는 세탁기 수리공으로 일하며 2년여를 살았다. 한국에서는 조계종 종회 의장을 지내던 그였다. 스님은 언어에 구애받지 않는 빼어난 강연자였다. 그의 1대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 무상(無上) 스님은 1975년 예일대 법대에서 그의 법문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에 대해 “큰스님의 가르침 방식은 완전히 소크라테스 문답식이었다. 그의 언어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주어와 술어가 도치되고, 형용사와 명사가 혼동되는 ‘콩글리시’였지만 그의 법문에는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30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에서 그가 입적하려고 하자 제자들이 “스님, 열반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때 그는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

제자들은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쳐 온 스님의 뜻을 받들어 4일 다비장(茶毘葬)이 끝난 뒤에도 사리를 수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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