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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2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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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안은 신문사 소유 지분 중 개인(가족 포함)이 3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상위 3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65∼70%(1개사 20∼25%)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편집권의 법제화도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을 추진하는 이들은 신문 시장을 동아 조선 중앙일보가 독과점하고 있고, 사주가 편집권을 좌우해 여론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3개사의 독과점은 TV와 인터넷 등 달라진 여론 조성 환경을 외면한 주장이고, 공정거래법 규정(3개사 75%)에도 맞지 않는다. 소유 지분 분산도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다분하고 합리적인 근거도 없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해외 사례도 찾기 어렵다. 신문법을 주장하는 이들이 구미에 맞는 해외 사례를 찾지 못하자 “한국 신문 시장은 특수하다”고 주장을 바꾼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결함 외에도,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안은 해당 신문을 구독하는 수백만 독자들의 양식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주장이 맞는다면, 독자들은 사주의 뜻대로만 만든 신문을 눈감고 받아들일 만큼 판단력이 없는 것일까. 그것도 한달에 1만원을 웃도는 구독료를 내면서 말이다. 신문은 KBS처럼 설령 보기 싫어도 시청료를 안내고는 못 배기는 통합징수장치도 없다.
더구나 요즘 독자들의 눈은 얼마나 밝은가.
언론이 명예훼손을 우려해 병역 기피 혐의 연예인들을 이니셜로 보도해도, 이미 인터넷에선 실명이 떠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국사학)도 한 토론회에서 “이전에는 특정 언론이 여론을 조작하면 그게 사회를 휩쓸었는데 이젠 30분이 안돼 무참히 깨져버린다. 인터넷의 위력이다”고 말했다.
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달라진 매체 환경과 독자들의 식견은 기사 한줄 한줄에 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독자들에게 시장 점유율 제한을 적용해보자. 제한선에 이른 신문은 새 독자를 거절해야 한다. 독자를 늘리려는 행위도 ‘범죄’다. 이게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자는 건가?
소유 지분 제한과 편집권 법제화도 ‘독자의 렌즈’로 보면 어이없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주가 편집권을 전횡하는 신문은, 내부의 비효율성으로 독자가 요구하는 지면의 품질이 유지될 리 없다. 그런 지면에 구독료를 낼 독자도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92년 호주의 웨스트 오스트레일리안지(紙)가 낸 성명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사주는 유능한(good) 편집장을 해고하고 무능한(bad) 편집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신문의 질과 발행 부수에 영향을 미친다.”
신문에 대한 독자의 심판은 냉정하다. 굳이 신문법의 규제를 들이댈 만큼 어리석은 독자도 없다. 신문이 정부의 ‘세무조사’나 ‘언론 폄훼’가 아니라 독자의 소리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신문은 매체 환경의 변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래 청와대를 비롯해 방송과 일부 시민단체는 메이저 신문에 대해 ‘저주의 굿판’ 등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그 독자까지 모독(冒瀆)하려는 신문법은 대체 어쩌자는 것일까.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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