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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5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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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2월 향기 섞인 먼지 자욱하고/ 번화한 육가(六街)에는 마차소리 요란하네/ 집집마다 누각 위엔 꽃 같은 여인들/ 천만 가지 붉은 꽃처럼 어여쁜 모습 싱그럽네/ 주렴 사이로 웃고 떠들며 서로들 묻나니/ 장안의 봄은 누구 차지일까?’(위장의 ‘장안의 봄’ 중에서)
햇살이 따뜻해지고 붉은 꽃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무렵, 장안의 봄은 누구 차지일까? 당나라 말기의 시인 위장(韋莊)은 ‘홍루(紅樓)의 여인들’이 바로 그 봄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은 다시 그들을 멋진 말과 수레에 실어가는 과거 급제자들의 차지가 된다.
장안(長安)은 진(秦), 한(漢), 수(隋)에 이어 중국 고대제국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장식했던 당(唐·618∼907)의 수도였다. 당시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제국의 도시였다.
일본 동양사학계의 선구자로 당대(唐代)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남긴 이시다 미키노스케(石田幹之助·1891∼1974)가 유려한 문체로 전성기 장안의 풍속을 소개해 준다.
“차례차례 갖가지 꽃나무들이 요란스레 아름다움을 다툴 때면 장안성의 봄은 날로 무르익어, 향기로운 꽃내음이 동과 서 두 대로의 하늘에 가득 차고, 위수(渭水)의 물소리도 봄 안개에 잠기며, 종남산(終南山) 기슭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농염한 모란꽃이 장안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3월 15일 전후 장안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 꽃 잔치에 빠지거나, 페르시아나 인도 등 서역에서 당에 ‘선물’로 보낸 호희(胡姬)들의 춤과 노래를 즐기는 풍경, 관등(觀燈)놀이, 줄다리기, 줄타기 등 당시 흐드러진 봄날의 소소한 풍속들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장안엔 봄만 오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장안의 여름 역시 그 화려함이 봄 못지않다고 전해준다. 아이스크림은 없었지만 속에 꽃을 넣고 얼린 화빙(花氷)이라는 기둥이 딸린 탁자 위에서 차가운 수박이나 참외를 자르는 시원함 정도는 장안의 어디서나 누릴 수 있었다. 날이 더워지면 부잣집에서는 얼음기둥을 실내에 비치해 여름의 열기를 밀어내기도 했다. 당대의 한 시인은 이런 모습을 두고 “얼음조각 높이 쌓인 금장식 쟁반, 집 안 가득 오싹한 오월의 한기”라고 노래했다.
장안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던 왕원보(王元寶)의 집에는 용피선(龍皮扇)이라는 기묘한 가죽 부채가 있었는데 이 부채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한기가 돌 정도로 시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부정축재로 유명했던 왕홍(王홍)이란 관리의 집에는 지붕으로 물을 끌어올려 사방의 처마 끝으로 물을 흘러내리게 해서 더위를 쫓는 자우정(自雨亭)이란 정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는 시들과 세세한 풍속을 전해주는 생소한 용어들까지 꼼꼼하게 우리말로 풀어낸 옮긴이들의 노고 덕분에 당 제국의 수도 장안의 운치를 한층 더 음미해볼 수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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