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강점 살리고 약점 가리고… ‘포토제닉의 비밀’

  • 입력 2004년 6월 17일 21시 17분



《지난 달 초 프랑스 칸영화제와 한국의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에게 영국의 자동차회사 재규어에서 보낸 문서 하나가 전달됐다. 속살이 많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었을 때 차에서 우아하게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제안서였다. 언제 어디서도 항상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찍혀야 하는 스타들을 위해 자동차회사까지 나선 것이다. 대종상 시상식에 참석했던 한 여가수는 가슴과 허벅지가 지나치게 드러난 사진이 한 신문에 실리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배우만 그럴까. 요즘은 일반인들도 사진을 찍는 것만큼이나 잘 찍히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사진을 잘 받는’ 또는 ‘촬영에 적합한’이란 뜻의 ‘포토제닉’이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 모델로 나서는 포토제닉 선발대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고 수천 개가 넘는 사진촬영 관련 카페에는 ‘어떻게 하면 잘 찍힐까’에 대한 정보들이 즐비하다.》

○ ‘예쁘게 찍히기’ 셀카족 출현

인터넷에는 ‘셀카 잘 하는 법’이 매일 올라온다. ‘셀카’란 스스로 자신의 사진을 찍는 ‘셀프 카메라 촬영’의 준말. 지난해까지는 증명사진 같은 프로필 사진이나 PC캠(컴퓨터 화상 채팅용 카메라)에 잘 찍히는 방법이 위주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디지털 카메라로 셀카하기’가 더해졌다.

직장인 황세정씨(27)는 이에 대해 “자신의 모습이 가장 잘 나오는 각도를 자기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남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찍는다”고 설명했다. 요즘엔 각종 모임에서도 여럿이 함께 찍지 않고 각자 카메라를 꺼내 자신의 모습을 찍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강남이나 신촌 지역의 젊은이들이 모인 카페에는 카메라 플래시가 전기 채집기에 벌레 타듯 곳곳에서 번쩍거린다. 셀카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잘 찍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셀프 촬영의 기본자세는 ‘45-15도’ 촬영법. 카메라를 든 손을 앞으로 쭉 뻗어 옆으로 45도, 위로 15도 위치에 두고 자신을 찍는다. 이렇게 하면 턱선이 갸름해지고 눈이 크게 나오는데 이런 사진이 요즘 인기다.

여기에 각자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커버하는 노하우가 더해진다. 직장에서 ‘측면 찍기의 달인’이라 불리는 박정옥씨(24)는 오뚝한 콧날과 보조개를 강조한 옆얼굴을 주로 찍는다. 박씨는 마치 남이 찍어 준 것처럼 얼굴 너머로 배경을 자연스럽게 담는 고난도의 기술을 마스터해 주위의 부러움을 산다.

○ 일상의 기록, 날 보러 와요

왜 ‘예쁘게 찍히기’에 이렇게 관심이 높은가. 전문가들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공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네티즌들은 타인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에 대해 감상을 쓰기도 하고 예쁜 사진은 다른 게시판으로 ‘퍼’ 나르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게 유통되던 사진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인터넷 ‘얼짱’ 스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예쁜 사진을 위한 경쟁이 붙는다.

레이싱 걸 출신의 오윤아나 햄버거 가게의 평범한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던 남상미는 사진 한 장으로 뜬 대표적인 케이스. 이들은 일부 팬에 의해 올려진 사진이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연예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일반인 홈페이지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르기 때문에 예쁜 사진은 나를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패션사진작가협회 김용호 대표는 이런 세태를 ‘노출증의 대중화’라고 설명했다.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감정을 이미지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그는 “(셀카의 경우) 촬영자와 촬영 대상이 하나이기 때문에 매우 적극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찍힘의 대상’일 뿐이던 피사체가 이제 능동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 만인이 얼짱, 그 허와 실

포토제닉 열풍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과거에는 신(神)이 회화나 조각의 대상이 됐다면 요즘은 스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사진의 대상이 되어보고 싶다는 심리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자신의 사진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 소외에 대한 반증이며 더 나아가 자기중심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노출을 통해 존재를 알리고 다른 사람의 관심을 통해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가끔 정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실제 모습이 아니라 ‘이미지 조작’ 프로그램으로 가공한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얼굴의 잡티를 없애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애교스러운 작업부터 가지도 않은 곳의 배경을 삽입하거나 턱 선을 깎고 콧대를 높이는 등 성형수술에 가까운 ‘터치’를 한 사진도 흔히 돌아다닌다.

상명대에서 ‘사진과 사회학’을 강의하는 정현실씨는 “최근 웰빙 바람에서 볼 수 있듯 자신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남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이미지에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원서에 이미지를 가공한 증명사진을 붙였다가 면접에서 떨어진 학생들도 상당히 많다”고 소개했다.

얼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케이블 방송 퀴니에서 얼짱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강진수 PD는 “인터넷 얼짱들이 실제로 만나보면 ‘얼꽝’인 경우도 많다”며 “스타로 성장하기 위해선 외모뿐 아니라 개개인의 소양이나 ‘끼’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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