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흥행 연출가’ 김광보씨 “배우만으로 이야기하겠다”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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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을 완전히 들어내고 타원형의 경사진 무대에 맞춰 객석을 새로 만들어 배치했다.” “음악도 없앴다. 모든 것은 배우들의 몫이다.”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극단 청우 대표인 연출가 김광보씨(41·사진)는 19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뙤약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인류 최초의 키스’ ‘산소’ ‘당나귀들’ ‘프루프’ ‘웃어라 무덤아’ 등 완성도 높은 무대들을 선보여 평단과 객석으로부터 두루 호평 받았던 그도 극단 청우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는 조금 긴장된 표정이었다. 식사를 앞에 두고도 얘기는 그치지 않았다.

“최근 2, 3년 사이 나에 대한 여러 평가는 기분 좋기도 하지만 때론 회의가 느껴지기도 해요. 늘 ‘흥행 연출’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 게 못 마땅하고요(웃음). 내가 지금 어떤 연극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스스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폭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떠올렸죠.”

‘뙤약볕’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박상륭씨의 동명 소설이 원작. 눈에 보이지 않는 말(言語)을 숭상하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말의 허위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시작된 살인, 질병, 죽음, 고통을 통해 인간이 자초한 파멸과정을 담아냈다. 그는 “박 선생님의 초기작품이라 쉽고 재밌다”며 작품이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버려달라고 강조했다.

빈 무대위에서 음악도 없이 배우들의 입과 몸을 통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연극 ‘뙤약볕’. 대학로에서 각광받는 연출가 김광보씨는 “어렵기로 소문난 박상륭 선생의 소설이 원작이긴 하지만 초기 작품이라 쉽고 재밌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1998년 그가 직접 각색과 연출을 맡아 극단 미추의 초연으로 선보인 ‘뙤약볕’은 당시 한국대표희곡, ‘올해의 연극베스트 5’ 신인연출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휩쓸었다. 그즈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다는 그는 ‘내가 다시 연극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이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뿌리를 내렸고 주목받는 연출가로 떠올랐다.

“6년 전의 이 공연을 비디오를 통해 배우들과 함께 봤는데 낯 뜨거워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얼마나 힘주고 무게 잡았는지…. 이번엔 무대장치나 음악 같은 기술적 부분은 배제하고 공간과 여백을 만들어 관객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놓은 음악도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파도소리, 비, 천둥소리 등 효과음으로 대체할 생각이다.

‘모든 걸 배제하고 배우만을 보여주겠다’는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어찌 고달프지 않을까. 옆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던 ‘젊은 당굴’ 역의 윤상화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광보 형은 정적인 가운데 동적인 에너지가 들어있는 몸짓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며 “(배우를 믿어주는 만큼) 눈물겹게 감사하고, 눈물겹게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자신이 배우를 혹사하고 쥐어짜는 연출가라고 선선히 시인한다. 그래도 10년을 함께 한 연출가와 배우들의 유대는 더없이 끈끈하다. ‘누이’ 역으로 나오는 문경희씨는 “10년 가까이 만났지만 만날수록 신선하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 해가 갈수록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며 김씨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끝으로 김씨가 한 마디 툭 던졌다.

“10년 결산무대가 아닙니다. 다시 시작하는 무대죠. 10년은 어떻게 버틴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 10년을 가기 위한 길목에 서있다고 생각해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그 의도를 보여주자는 생각입니다.”

그의 새로운 도전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7월11일까지 화목 7시 반, 금토 오후 4시 7시 반, 일 3시 6시. 02-764-7064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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