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투모로우’ 에머리히 감독 인터뷰

  • 입력 2004년 5월 13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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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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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뉴욕을 부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년)에서는 외계인이, ‘고질라’(1998년)에선 거대한 괴물이, 다음달 4일 국내 개봉 예정인 신작 ‘투모로우’에서는 자연이 뉴욕을 파괴했다. 뉴욕에 무슨 감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뉴욕은 세계인의 눈에 익은 도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다 알지 않나. 그런 도시를 파괴해야 실감이 난다. 만일 시카고를 파괴한다면 뉴욕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질 것이다.”

7일 프랑스 파리에서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의 시사회가 끝난 뒤 각국 기자들과 만난 에머리히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로 남극의 빙산이 녹아내리자 지구의 해류 체계에 이상이 생겨 결국 북반구에 제2의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 영화에서 뉴욕 맨해튼은 해일로 파괴된 뒤 얼음으로 뒤덮인다.

그러나 에머리히 감독은 “이번에는 파괴를 자제한 편”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맨해튼을 삼킬 만한 해일이 몰려 왔어도 자유의 여신상은 휩쓸려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뉴욕의 상징적 건물이 무너진 9·11테러 이후 파괴도 조심스럽게 하게 됐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당신은 독일 출신이지만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해 왔다.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미국에서 일한 지 14년이 넘었지만 아직 미국 여권이 없다. 지금도 독일 사정이 궁금해 독일 신문을 자주 읽는다. 영화감독으로서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기획력이다. 이런 장점은 독일인의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을 좋아하지 않나.

“미국을 사랑하지만 때론 미워한다. 특히 힘만 앞세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미워한다. 나는 할리우드 감독이지만 지나치게 (미국에) 애국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이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인디펜던스 데이’는 애국적 영화가 아닌가. ‘인디펜던스 데이’가 파리에서 개봉됐을 때 프랑스 관객들이 야유를 보냈다는 사실을 아나.

“그래도 ‘인디펜던스 데이’가 돈은 많이 벌어줬다(웃음). 이번에 만든 영화는 다르다.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다. 할리우드 식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투모로우’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토네이도(회오리바람)에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대형 영문 입간판이 날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혹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간 미국인들이 봉쇄된 멕시코 국경 앞에서 아우성치다 불법 입국하는 내용도 있다. 현실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상황과는 정반대다.

말미에는 미국 대통령의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이 멕시코에서 “이제 우리는 제3세계의 신세를 지게 됐다. 우리를 받아준 그들의 호의에 감사드린다”고 연설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슈퍼 파워’ 미국에 대한 풍자나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이 모든 걸 압도하고, 심지어 잊어버리게 하는 놀라운 시각효과(Visual Effects)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 거부로 물의를 빚은 미국의 할리우드가 지구 온난화를 소재로 볼거리 넘치는 블록버스터를 찍어낸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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