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서씨 “어머니위해 북채 잡았어요”

  • 입력 2004년 4월 28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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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제24회 전국 고수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탄 이발사 출신의 고수 박봉서씨. 그는 “북 장단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고 말했다. -전주=연합
28일 제24회 전국 고수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탄 이발사 출신의 고수 박봉서씨. 그는 “북 장단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고 말했다. -전주=연합
“이발 가위 대신 북채를 잡은 지 10년 만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28일 전북 전주시 덕진동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폐막된 제24회 전국고수대회 대명고부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박봉서씨(57·전남 진도군).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발사였다. 1995년 북의 매력에 빠져 20여년간 천직으로 삼았던 가위를 버리고 대신 북채를 집어 들었다.

한창 커가는 아이들의 학비는 물론 생활비가 만만치 않던 40대 후반의 가장이었지만 그는 ‘북소리가 너무 좋아’ 미련 없이 이발소를 처분하고 고수의 길을 택했다.

광주미용협회장 등을 수차례 맡는 등 광주에서 잘나가던 이발사였던 그는 고수의 길로 접어든 지 얼마 안돼 그간 모아 둔 재산을 모두 까먹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 왔다. 아내(52)와 자녀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조상현 명창에게서 보성소리를 익혔고 인간문화재 김성권씨를 쫓아다니며 악착같이 북을 배웠다.

서울전통고수대회(2002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북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째지만 지금까지 최고상을 타 본 적이 없는 박씨는 이날 김세미 명창의 흥부가와 수궁가에 맞춰 마치 사모곡(思母曲)을 부르듯 수준 높은 진양조의 장단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매년 전주에서 열리는 전국고수대회에 두 번이나 참가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했던 그는 이날 전국에서 출전한 내로라하는 9명의 고수를 제치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환갑을 눈앞에 둔 그지만 지금도 어머니 앞에서 소리와 북을 칠 때가 가장 즐겁다는 효자다.

그는 “취미로 판소리와 북 장단을 즐겨했던 어머니(김복덕·77)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생각으로 북채를 잡았다”면서 “어머니의 칭찬과 꾸중 덕분에 오늘 같은 날이 왔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국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북 장단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면서 “후학들과 함께 북과 소리의 아름다운 맛을 확산시켜 나가도록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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