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PD논객 이진경 교수 파격주장 자본론 해설서 펴내

  • 입력 2004년 4월 23일 18시 46분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김미옥기자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김미옥기자
1980년대 운동권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논객이었고 90년대에는 탈(脫)근대사상 연구에 주력해 왔던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 교수가 최근 마르크스 ‘자본론’의 해설서인 ‘자본을 넘어선 자본’(그린비)이라는 책을 냈다. 1990년 공산권 붕괴와 더불어 니체와 푸코, 들뢰즈 등에 대한 연구로 줄기차게 치달아 일부에서 ‘탈주(脫走)의 철학’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마르크스주의로 귀환한 것일까.

“90년대의 저는 마르크스주의를 그 내부의 논리에서 변명한 것이 아니라 밖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문제를 수긍하고 극복하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먼 길을 돌아온 그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은 파격으로 가득하다. 우선 마르크스가 상품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노동뿐이라는 노동가치설을 옹호했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심지어 그는 공산주의라는 용어조차 거부한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역사발전의 최종단계로서의 공산주의’는 마르크스가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여러 생산양식 중 하나로 언급한 것을 레닌 등이 역사발전 5단계론에 끼워 맞춘 ‘억지 예언’이란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 연합’이라는 의미의 ‘코뮌(commune)주의’를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영원히 오지 않는 고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반대로 코뮌주의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남들의 삶에 적극 개입하는 혁명을 꿈꿨다면 코뮌주의는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조용한 실천을 꿈꾼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가 90년대 후반부터 꾸려오고 있는 학문공동체 ‘너머+수유’야말로 그런 실천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에 대해 “국회가 ‘유일한 정치의 장’이 아니라 ‘수많은 정치의 장의 하나’라는 측면에서 동참은 못해도 지지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회로 진출한 주사파 386세대에 대해선 “여피로 바뀐 히피일 뿐”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80년대에 주사파를 매섭게 비판했던 그의 북한체제 비판은 더욱 매서웠다. “북한체제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그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토정비결을 보고 점을 보러 간다 해서 그것이 미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요. 스스로를 불사르지 못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법입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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