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푸른눈의 헌책방 주인 치아베타씨

  • 입력 2004년 4월 20일 18시 43분


직접 자재를 사다가 선반을 짜며 꾸민 서점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크리스 치아베타는 “서점 사업에 성공하자 아이디어를 달라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영한기자
직접 자재를 사다가 선반을 짜며 꾸민 서점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크리스 치아베타는 “서점 사업에 성공하자 아이디어를 달라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영한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이슬람 사원 뒤쪽 길을 걷다 보면 조그만 헌책방 ‘왓 더 북(What the book?)’이 나온다. ‘허름한 헌책방 아저씨’를 만날 것으로 기대하고 서점 문을 여는 순간 빼곡하게 들어찬 책 사이로 청바지 차림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젊은 외국인이 ‘하이’ 하며 손님을 맞는다.

중고 영어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이 책방의 사장님인 미국인 크리스 치아베타(29). 그는 “점원인 줄 아셨죠”라는 농담과 함께 “지난해 초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뒤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서 책방을 냈다”고 설명한다.

치아베타씨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역동적 기질의 소유자. 인터뷰 중에도 이쪽저쪽 책을 바꿔 진열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사업’도 역동적이어서 다음 달에 100만 권의 서적을 보유한 인터넷 서점(www.whatthebook.com)을 오픈하고 내년에는 이태원 중심가로 가게를 옮길 계획이다.

그는 3년 반 전 한국에 와서 영어강사 일을 하다가 지난해 7월 서점을 열었다. 당장은 영어강사 생활이 수입이 더 좋을지 모르지만 ‘가장’으로서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충고를 따랐다고 한다. 서점을 택한 것은 책을 워낙 좋아하는 데에다 경쟁이 비교적 덜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의 책방을 찾는 손님은 1주일에 평균 130∼150명. 외국인이 주요 고객이지만 한국인도 30% 정도 된다. 그는 “외국인은 소설류를 좋아하는 반면 한국인은 ‘OO하는 방법’류의 실용서를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외국서적을 대량 구비한 대형서점들과의 경쟁에서 소형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고객 서비스’뿐이라는 판단 아래 그는 자신의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만 손님이 원하는 책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다는 것. 모든 방문객에게 공짜 카푸치노, 에스프레소를 제공한다는 홍보도 잊지 않았다.

조만간 한국어 서적도 판매하고 싶다는 그는 “그러기 위해선 빨리 한국말을 배워야 할 텐데…”라며 웃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