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아름다움을…' 렌즈로 훔친 '藝人의 아름다움'

  • 입력 2004년 2월 13일 17시 35분


전통소리에 춤과 재담, 몸짓을 가미한 공옥진의 춤. 그의 춤은 민중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사진제공 디새집

전통소리에 춤과 재담, 몸짓을 가미한 공옥진의 춤. 그의 춤은 민중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사진제공 디새집

◇아름다움을 훔치다/김수남 글·사진/280쪽 9500원 디새집

무당, 광대, 소리꾼, 춤꾼, 가야금 연주자…. 한때는 천하다고 멸시받고 지금은 귀하게 여겨지면서도 역사 속에 박제화돼 가고 있는 우리 민중사 속의 예인(藝人) 11명의 초상이 이 책 속에 담겼다.

초상이라 함은 우선 저자인 사진작가 김수남의 카메라에 포착된 그들의 사진집이란 뜻이며 동시에 오랜 시간 김수남의 육안이 담아낸 기억의 초상이란 뜻이다. 김수남은 사진 속 주인공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민속문화에 대한 체험적 해설을 활자로도 기록했다.

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인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전국의 굿판과 놀이판을 돌아다니며 이를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해왔다. 1983년부터 10년에 걸쳐 펴낸 ‘한국의 굿’(전 20권·열화당) 시리즈는 그런 발품의 결실. 사라져 가는 민속문화의 원형을 필름에 붙잡기 위한 노력은 무형의 동작과 움직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카메라를 놓고 그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고 막걸리 잔을 함께 기울이며 피사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범패(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의 대가 박송암 스님은 대한제국 말 개화파 박영효의 손자이지만 대처승이 되어서도 이발사와 양복점 직원 등을 전전했다. 서편제와 동편제를 넘나든 명창 김소희에게는 애제자들이 실연으로 자살하고 지병으로 요절한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무당 집안에서 태어난 살풀이 대가 김숙자는 일제강점기 굿이 금지된 탓에 토굴 속에 숨어서 아버지에게 무당과 광대에게 필요한 기술을 배웠지만 굿판에서의 춤은 열다섯 살 때가 마지막이었고 그 후로는 무대의 무용가가 돼야 했다.

책에는 예인들의 눈을 거울삼아 드러나는 인간 김수남의 면모도 슬쩍슬쩍 묘사된다. 제주 심방(무당) 안사인 편에는 그가 굿판의 슬픈 사연에 매번 펑펑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저 심방(김수남)은 굿은 안 하고 울기만 하느냐”고 했다는 사연이 스쳐간다. 저자 스스로 “원래 눈물이 많은 터라 슬픈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절로 눈물이 펑펑 쏟아져 주체할 수 없던 나는, 이 눈물 덕도 많이 봤다”고 고백한다. 그가 수많은 예인의 마음속 옷고름을 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능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수남은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눈을 지닌 큰무당이다. 단지 방울과 부채 대신에 사진기를 들고, 공수를 내리는 대신에 셔터를 눌러 자기가 본 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보통 무당과 다를 뿐이다.”

그와 함께 20여년간 굿판을 누빈 김인회 전 연세대 교수의 이 말이 지나친 헌사는 아닌 듯하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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